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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감상문 감상

구름뜰 2015. 10. 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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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나. 아픈 정도가 아니라 상처투성이고 선혈이 낭자(狼藉)하다. 청년실업이 심각하다고, ‘3포’니 ‘5포’니 ‘7포’니 하는 말을 들었어도 그런가 보다 했다. 내 일로 체감을 하지 못하니 ‘아버지의 일자리를 쪼개 아들에게 나눠주자’는 구호도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고 딴전을 피웠다. 임금피크제 등 이 정부의 노동개혁도 번지수를 잘못 찾고 있는 게 아닌지, 청년 일자리를 늘리려면 노인 일자리부터 마련해야 일자리 선순환이 되는 게 아닌지 가볍게 생각했는데…. 늦었지만 청춘에게 청춘을 돌려줄 치유책이 전방위로 모색돼야 한다는 걸 절감했다.

    ‘제22회 영남일보 책읽기 상(賞)’ 독서감상문을 공모에 보내 온 청년들의 글을 정독하면서 숨이 컥 막혔다. 대학·일반부 예심을 통과한 35편의 응모작 중 20편이 20~30대의 글이었는데, 하나같이 울울(鬱鬱)한 심사를 토해낸 것들이었다. 청년들의 고민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청춘의 특전일 것이 분명한데도 하나같이 조바심과 회의, 불확실성과 절망의 나락에서 신음하는 글들을 왜 유독 올해 많이 접하게 되는 것인가. 고백과 하소연, 원색적인 분노의 표출과 절규, 고통의 아우성들이 어찌 메아리를 만들어 내고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인가. 청춘과 함께 글도 버림받은 처연한 신세다.

    글쓰기마저 고령화가 대세다. 40대는 물론 60대까지 도전정신을 보이는 장년들이 늘고 있고 이들이 쌓아 온 내공도 만만찮다. 평균수명 증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그렇다면 청춘의 정의도 새로 쓰여야 하지 않을까. 언제부터인지 신문사에서 공모하는 신춘문예에도 20~30대 문청들이 자취를 감추고, 늦깎이 등단이 일반화되는 추세니 이젠 신춘문예가 아니라 ‘신추문예’라 해야 걸맞지 않을까 싶다. 독서의 양극화 현상도 엿보인다. 통계에 의하면 OECD 국가 중 우리 국민의 평균 독서량이 꼴찌를 면치 못한다는데, 눈에 띄는 일부 글의 경우 전업작가 못지않은 수준을 자랑하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이 의외로 독서 마니아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예심을 통과한 응모작들 사이에 수준의 편차가 확연하다는 말이다. 글쓰기의 상향평준화가 교육의 한 목표로 설정됐으면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연적으로 더하는 경륜과 연륜의 나이테를 감안하더라도 젊은이들의 독해 능력과 글쓰기는 상대적 빈약함을 감추기 어려웠다. 20~30대의 작품들에서는 풍부한 상상력과 기발한 창의력, 그리고 예민한 감수성을 찾아보려 한 기대가 애당초 무리였는지, 그만큼 현실이 팍팍하고 힘들었으리라 짐작이 되고도 남아 다소 후한 점수를 주려해도 진솔한 글마저 발견하기 어려워 못내 안타까웠다. 문학에 목매 사는 ‘문청’들이 많이 나오는 시절이 다시 와야 빼앗긴 청춘에도 봄이 올 것인데.

    젊은이들의 독서 트렌드 역시 ‘미움 받을 용기’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등의 자기계발서가 메인 스트림을 형성하는가 하면, 세월호 사태를 정면으로 다룬 ‘금요일에 돌아오렴’과 ‘한국이 싫어서’ 등 사회적 부조리에 저항하고 분노하는 흐름도 한 줄기를 이뤘다. ‘지금 여기’ 대한민국을 사는 청년 개인은 물론 사회까지 아프다는 사실과 치유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처럼 열악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우리의 청춘들이 관계를 단절한 자폐적인 ‘힐링’에 빠지지 않은 채 어렵사리 ‘용기’란 새로운 키워드를 발견했다는 게 그나마 다행스럽고 대견하다.

    청춘의 죽음을 고하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청춘을 제자리로 돌려줄 일이다. 청춘의 독서와 글쓰기가 이처럼 홀대당한 시기가 있었는가. 대기업의 CEO들은 청춘들을 향해 입만 열면 인문학을 강조한다. 인문학이 모든 학문의 기본이고 기초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교과 과정에 글쓰기 과목이 없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논술 시험이사라진 자리를 판에 박힌 자기소개서가, 그것도 사교육이 대신하는 나라에 인문학이라니,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글쓰기는 인문학의 완결판이다.

     

    -영남일보 조정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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