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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나는 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

구름뜰 2015. 9. 10.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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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된장국이 그립기는 하나
    패스트푸드가 익숙하듯
    인간내면 황폐화된다고
    인터넷 거부 어려운 시대,
    詩人은 온기 전할 역할을

    명필름에서 만든 ‘접속’이라는 영화가 나온 지 거의 20년이 되어 간다. 고속 인터넷이 사용되기 전에 만든 낭만적인 여운을 풍기는 영화였다. 서로 모르는 남녀가 가상공간에서 음악을 매개로 대화하지만 오프라인의 어느 레코드 가게에선 서로 모른 채 스쳐 지나가는, 여운이 오래 남아 있던 영화다. 그동안 인터넷의 발전은 급속도로 진보하여 이제 가상현실은 현실과 구분 없이 정교하게 이미지화되어 존재하고 있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서 인간과 기계의 만남으로, 그리고 종내는 기계와 기계의 만남이 될 수순을 밟게 될 거라는 예상이다. 우리들 심장이나 관절엔 이미 기계가 박혀있지 않은가.

    작업 때문에 갇히듯 지내다 보면 꽤 오랜 날 동안 사람을 대하지 않고 접속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e메일이나 카카오톡, 그리고 트위터 등. 그런데 큰 불편함이 없다는 점이 스스로 놀랍다. 멀리 갈 것 없이 요즘 우리가 사는 풍속도를 보면 더욱 실감된다. 생필품과 식사는 물론 필요한 정보와 심지어 외로움까지도 인터넷 접속으로 해결가능한 시대이니 말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상당 부분 면 대 면이 아니라 접속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젊은 친구들은 이보다 더 진전된 방식의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 일찍 인터넷의 속성을 간파한 시인 이원은 이렇게 썼다. “나는 클릭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사실 만나서 번거롭게 이야기하는 일보다 전화가 편리하고 전화와 편지보다 문자메시지나 e메일이 간편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 접속이란 것이 무엇보다 사람을 만났을 때 소모해야 하는 감정의 낭비를 줄일 수 있고 불필요한 격식과 형식에 드는 절차를 생략할 수도 있다. 또한 경제성과 속도성에서도 매력적인 메커니즘인 것만은 사실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란 즐거움인 동시에 고통일 때가 부지기수인데 진심이나 진실이 왜곡될 때 특히 그러하다.

    어떤 이해관계 아래서 인간의 이기가 우선할 때 마음이란 얼마나 무력한가. 사람들을 특히 열광하게 한 스마트폰의 위력이라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 무한한 정보는 물론 면 대 면의 어려움과 절차를 해결해 준 것도 한 덕목일 것이다.

    인터넷의 위력이 강할수록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은 황폐해져 갔을 것이나 그런 이유로 흡인력 있는 이 문명을 거부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어떤 일에나 명과 암이 있으니 한 가지 논리로 해석하기 어렵지만 지나친 흐름에는 폭력성이 내재함을 부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문제는 된장국이 그립기는 하지만 이미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마음이 황폐해졌을 때나 정신이 아플 때는 이 방식이 도저히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알리라. 지난해 원인도 없이 앓은 적이 있다. 까닭 없이 몸이 아파 약을 먹고 병원엘 가도 낫지 않을 때, 언니가 와서 하던 일을 다 덮고 나를 데려가 웃고 떠들고 TV를 보면서 더운 음식을 해 먹이자 하루 만에 증세가 사라졌던 것이다. 문명의 이기와 편리함이 결코 줄 수 없는 것은 ‘마음’이라 여긴다.

    그런 문명의 장 뒤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말한 지 20여 년이다. 더하여 시가 사라지는 시대를 예측한 지도 오래되었다. 어느 시대에나 말할 수 없는 진실이 있고 말할 수 없지만 누군가는 말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인문학의 일이며 곧 문학인의 역할일 것이다. 따라서 과학 문명의 틈바구니에서도 살아남는 것이 문학일 것이며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시라면 시인은 가장 나중까지 남아서 기기 대신 온기를 전해야 하는 그 역할을 해야 하리라.이규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