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의미와 리추얼ritual

구름뜰 2016. 4. 19. 10:39

 

인간 행위의 심리학적 설명에서 '의미'와 '재미'는 가장 중요한 차원이다. 재미가 주로 개인적 동기 차원에서 설명된다면, 의미는 개별적 행위가 가지는 사회적 인정의 차원과 관리된다. 재미의 차원에 관한 심리학적 설명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되지만, 의미의 구성 과정에 관한 설명은 그리 많지 않다. 개인적으로 내가 향후 10년간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바로 '의미의 문화적 구성 과정'이다.


리추얼은 의미 구성의 가장 중요한 맥락이다. 리추얼은 습관처럼 반복된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습관과는 달리 리추얼은 정서적 반응을 동반한다. 인간은 정서적 변화가 일어나면 어떻게든 이 정서적 변화를 정당화해야 한다.


리추얼로 동반되는 정서적 변화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의미'가 구성된다. 의미가 구성되는 리추얼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종교적 의례다. 신앙심이 깊은 이들은 예배를 드리거나 불공을 드릴 때, 내면에서 아주 강한 정서적 변화를 겪는다. 이 정서적 변화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신의 섭리' '부처님의 자비'와 같은 의미부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종교적 행사에서만 의미부여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반복적인 과정에서 정서적 변화가 동반되면 의미부여가 일어난다. 행복한 사람일수록 사소한 리추얼이 많다. 음악 감상이나 독서, 등산도 정서적 변화가 동반되고, 인지적 정당화가 일어나면 아주 훌륭한 리추얼이다. 그러나 그 어떤 정서적 경험도 부재하면 삶의 의미는 부여되지 않는다.

-김정운


조선시대 이덕무가 쓴 '간서치(책만읽는 바보)'를 보면 하루 종일 방에 틀여밖혀 책만 보는 선비가 있다. 이 선비가 하는 짓은 봉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따라가며 책을 읽고,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웃기도 한다(대충 기억에 남는 이미지다)


요즘 김정운의 '가끔은 겪하게 외로워야 한다'라는 신간을 보고 있다. 글이 솔직담백하다 .걸림없는 사유도 좋고, 직접 몸으로 살아내는 과정에 있는 것도 보기 좋은 남자다. 그리스인 '조르바' 처럼 살고 싶어서 잘나가던 교수직 사표 내고 일본가서 그림 배우며 쓴 글인데 맛깔나다.


위 문장을 쉽게 요약하자면 음악을 듣거나 독서 등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하는 일에서 재미와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감성이 있다면, 종교인으로 살지 않더라도 정서적 변화와 인지적 정당화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행복한 사람일수록 사소한 리추얼!이 많고 그 시작은 정서라는 얘기다. 


간서치처럼 하루 종일 붙들려 있지는 않지만, 번거로운 중에도 책을 펴면 책속으로 빠져들게 되고, 어느 순간 새로운 통합이나 응용력까지 생길때가 있다. 책이 주는 기쁨인데. 위 문장을 읽으면서 마지막 문장이 옳거니 싶어서 여기다 옮겨보게 된다. 


'시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절제의 아름다움  (0) 2016.05.09
수조 앞에서  (0) 2016.04.28
인연이야기   (0) 2016.04.03
한 사람  (0) 2016.03.30
현장검증  (0) 2016.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