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수조 앞에서

구름뜰 2016. 4. 28. 08:25


 




아이 성화에 못 이겨
청계천 시장에서 데려온 스무 마리 열대어가
이틀 만에 열두 마리로 줄어 있다
저들끼리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먹힌 것이라 한다

관계라니,
살아남은 것들만 남은 수조 안이 평화롭다
난 이 투명한 세상을 견딜 수 없다.
- 송경동(1967~ )


수조 속 풍경이 끔찍한 것은 그것이 인간 세계의 폭력적  예각을 투명하게 되비쳐주기 때문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재화를 놓고 싸우는 승자 중심의 세상은 “죽임을 당하거나 먹힌 것”들에 대한 애정이 없다. “살아남은 것들만”의 평화라니, 얼마나 잔인한가. 짐승성의 단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타자에 대한 “조건 없는 환대의 법”을 모든 “조건적 법들”(데리다)의 위에 놓아야 한다. 실현 불가능한 ‘사랑’을 꿈꿀 때, 인간은 짐승의 상태에서 서서히 벗어난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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