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직 기념전시실을 찾아서
금오산 가는 길에 위치한 ‘구미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이하 생활관)은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하여 세워진 건물로 서울, 대구, 부산을 비롯해 전국 14개 생활관 중 경북에서는 유일하다.
주요 시설로는 수영장과 헬스장, 에어로빅장, 배드민턴구장, 농구대가 있고, 행사 대관이 가능한 소극장과 전시실, 안내실 등이 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에 개장한 박세직기념전시실이 자리해 있다.
영원한 올림픽맨, 박세직 위원장
박세직 위원장(1933~2009년)은 구미(현 인동 구평리) 출신으로 우리에겐 '영원한 올림픽맨'으로 기억에 남은 분이다.
한국전쟁이 났을 때 17세의 나이로 학도병에 자진 입대를 했고, 육군 사관학교(12기)를 졸업, 수도경비 사령관, 총무처장관, 체육부장관,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 조직위원장, 서울시장, 구미시 국회의원을 거쳐 2002년 월드컵조직위원장을 역임했다.
아시안게임은 '영원한 전진'이라는 표어 아래 아시아 27개국이 참석했다. Smile 친절, Service 봉사, Sanitation 청결, Security 안전이라는 ‘4S 정신’을 주창, 성공적인 대회 운영에 만전을 기한 덕분에 기획력이나 조직, 시설, 서비스 면에서 큰 성과를 내며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2년 뒤에 열린 88올림픽의 교두보가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서울올림픽 성공 개최로 국가발전에 기여
제24회 88서울올림픽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열리는 세계적인 행사였다. 그만큼 온 국민의 기대가 컸다. 당시 올림픽 개최를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고, 북한의 끈질긴 방해공작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정부 각 기관, 민간단체, 언론, 국민을 설득, 협조와 성원을 얻어냈고, 마침내 서울올림픽을 최다 참가, 최상의 화합, 최고의 성과, 최적의 안전 및 봉사, 최대의 축제로 만들었다.
한국 전쟁이 끝난 지 불과 40년이 안되어 ‘서울을 세계로, 세계를 서울로’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올림픽은 세계인의 눈과 귀를 집중시켰다. 대회를 통해 전 세계에 선보인 한민족의 감각은 유니폼에서부터 원형 성화대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함 없이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유니폼은 품평회를 거쳐 만전을 기했고 성화대는 한국 전래의 촛대 모양을 원형으로 22m 높이로 잠실에 우뚝 솟아 올림픽기간(88. 9. 17 ~ 10. 2)동안 불을 밝혔다. 경기 정시 진행률도 뮌헨올림픽을 능가하는 97%에 달했다. 이로써 세계인의 한국관과 한국인의 세계관을 바꾸어 놓는 계기를 만들었다.
올림픽 및 월드컵의 감동을 전하는 전시실
2002년 한일월드컵(2002.5.31~6.30)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운영한 노하우에 12번째 선수 붉은 악마까지 더해서 또 다시 세계인의 가슴에 붉은 인상을 남겼다. 응원이 월드컵의 명물이 되었고 그 결집력이 4강으로 이어지는 신화도 남겼다.
전시실에는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올림픽, 2002월드컵과 관련한 개요 및 성화, 유니폼 등 그의 궤적을 볼 수 있는 생전 소장품이 1백여 점 넘게 전시되어 있다, 어릴 적 군인시절부터 서울시장, 국회의원 의정활동과 우리 국민이 기억하는 올림픽 개회식 그날의 영상물도 시청할 수 있으며, 올림픽 경기장 배경의 포토존도 있다.
인류평화와 화합의 정신인 스포츠!
올림픽이 정치, 경제, 외교, 문화, 예술을 이끌며 국가 간의 이해도모와 세계 평화에도 기여한다는 걸 알았던 그는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환희의 함성을 울려 퍼지게 했고, 한마음 한뜻으로 합심하였을 때 높아진 자긍심이 국격까지 높인다는 걸 국민들이 경험하게 했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거시적 안목으로 구국의 성화를 밝힌 진정한 리더 박세직 위원장. 기념전시실을 나오면서 구미가 기억해야 할 현대사 영웅을 만나고 돌아 나오는 기분은 남달랐다.
취재/ 시민명예기자 이미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