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정 시인 |
더 죽은 시인의 사회로 변해
가족·이웃·친구의 결속 약화
입시 위주 교육으로 변해가
꿈 있는 공존경쟁 마련되길
덜컹댄다. 카페 벨-레브에서 존 키팅 선생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I는 지하철 문에 기대어 점멸하듯 그와 나눴던 얘기들을 생각해본다.
선생은 우리 사회가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보다 더 죽은 시인의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고 했다. 그 원인을 시대의 변화로 인해 각종 자동화된 기기와 더불어 프로그램화된 일상을 기계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과 아무런 자각 장치 없이 무의식적으로 무의지적으로 그것을 추구하며 따르게 만드는 구조적 모순과 거기서 파생된 집단적 분위기에서 찾아보고 있었다. 선생은 연극배우를 꿈꾸다가 아버지의 반대로 자살을 한 제자 ‘닐 페리’를 상기하면서 ‘죽은 시인의 사회’는 개개인의 정당한 꿈과 그 방향을 사회가 모순된 구조로 조정하거나 재단하려고 하는 사회라고 했다. 특히 과잉 경쟁을 유발하는 입시제도와 같은 모순된 틀은 현 시대와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어릴 때부터 그 꿈과 방향성을 사회가 조절하거나 제어하게 된다고 했다. 모순된 사회의 욕망이 마치 개개인의 꿈인 양.
덜컹댄다. I는 맞은편에 앉은 한 학생의 셔츠를 바라보고 있다. 모두 하얀색인데 특이하게도 마지막 단춧구멍만 빨간색이다. 단춧구멍들 때문인지 아니면 존 키팅 선생의 비유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천양희 시인의 시 ‘단추를 채우면서’가 떠올랐다. 시인이 어느 겨울날 외투를 입다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경험으로 쓴 이 시 전문을 I는 자신도 모르게 되뇌어보고 있다.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덜컹댄다. 점멸, 점멸하듯, 존 키팅 선생의 비유가, 학생이 입고 있는 셔츠의 특이한 마지막 단춧구멍이, 천양희의 시 ‘단추를 채우면서’가, 입시제도라는 구조적 모순이, 마지막 단춧구멍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첫 단추를 잘못 채운 경험들이, 다른 단춧구멍은 다 막혀있고 마지막 단춧구멍만 채울 수 있게 만들어놓은 이상한 교복의 상의가, I를 스쳐간다.
선생은 입시 제도를, 단추를 잘못 채울 수밖에 없는 교복에 비유를 했다.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는 이런 부조리한 입시제도는 첫 단추부터 같은 높이의 단춧구멍을 채우려고 하는 게 아니라 모든 단추들이 입시라는 마지막 단춧구멍을 채우기에만 급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도 개개인과 공동체의 개성과 특성을 고려하고 반영한 꿈과 인성 중심이 아니라 비중이 다른 틀에 박힌 교과목과 성적 중심으로 오히려 꿈과 인성을 찾고 형성하는 데 크게 저해하거나 반하게 된다는 것이다.
선생은 목을 축이며 덧붙였다.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보다 더 죽은 시인의 사회로 변해가는 이 사회는 시대의 변화를 꼭 되짚어봐야 한다고 했다. 과거와 달리 현대에는 꿈과 인성을 위한 시공간이 턱없이 부족하게 되어버렸다. 가족의 수(數)도 줄어들었고 친척과의 결속도 왕래도 예전과 같지 않다. 사촌과 같은 이웃도 거의 없고 오랜 시간을 함께 뛰어놀며 어울릴 또래도 잘 없다. 학교와 교육의 목적과 기능도 교과목과 성적에만 지나치게 편중됐고 라이프스타일도 각종 스마트기기와 프로그램 중심으로 변해 인성을 형성하기에 너무 열악한 환경과 조건이라고 했다.
덜컹댄다. 문이 열린다. I는 지하철을 나와 걸으며 꿈같은 얘기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하면서 말문을 연 선생의 꿈꾸는 학교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는 시대가 이럴수록 학교의 목적과 기능이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교과목과 성적에 비중을 둔 생존 경쟁의 학교가 아니라 앞으로의 학교는 꿈과 인성에 바탕을 둔 공존 경쟁의 장이 되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I는 꿈꾸는 학교를 생각하며 자율인지 타율인지 모를 야간학습을 마친 몇몇 학생들과 더불어 에스컬레이터를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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