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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저항시, 이상화와 밥 딜런

구름뜰 2016. 10. 25. 08:01


유미주의적인 이상화의 시구
결론 슬쩍 감춘 딜런의 가사
격렬하지 않지만 강한 저항시
현실·세상 향한 無聲의 함성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덕목





흔히 이상화 시인의 대표적인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일컬어 ‘가장 아름다운 저항시’라고 말한다. 서로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아름다운’이라는 서정과 ‘저항’이라는 투쟁이 그의 시에서 구현된 것을 의미한다.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음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여기서 시인은 봄이 오는 들판의 향긋한 대지의 풋내, 그리고 봄이 오는 것에 대한 기쁨, 그럼에도 마음껏 기뻐할 수 없는 현실, 그래서 들판을 하루종일 돌아다니다 깨닫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시의 아름다움은 “봄조차 빼앗기겠네”에서 말하듯, 아무리 현실의 들판은 빼앗길지언정 정신의 봄은 빼앗길 수 없다는 결기에서 빛난다.

이상화가 이와 같은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삶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었다. 젊은 시절 유미주의자이며 퇴폐주의자, 그리고 낭만파로서 ‘말세의 희탄’ ‘나의 침실로’ ‘이별을 하느니’ 등의 작품을 쓰던 시인이 관동대지진을 겪은 후 민족의 현실을 목도하고 철저한 현실 참여주의자가 되어 ‘가장 비통한 기욕’ ‘조선병’ ‘거러지’와 같은 거칠고 투박한 시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고향 대구로 돌아와 후학을 가르치다가 모든 것을 겪은 원숙한 시인의 관점으로 유미주의적 표현과 현실 참여의 정신이 동시에 어우러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아름다운 저항시를 쓰게 된 것이다.

2016년 노벨문학상을 미국의 대중가수, 다르게 표현하자면 ‘시인이자 문학가·사상가·철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싱어송라이터’인 밥 딜런이 받았다. 이맘때만 오면 우리나라 내로라하는 문학인들의 혹시나 하는 기다림에 찬물을 끼얹듯이 ‘일개 대중가수’인 밥 딜런이 받았다. 이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그 의미를 문학인들이 깊이 생각해보라는 것으로부터 노벨상조차 대중추수주의로 가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까지, 그 스펙트럼이 참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밥 딜런이 초기 민권운동과 반전운동 시기에 부른 노래들의 문학성만은 부정하지 못한다.

그의 대표적 노래인 ‘Blowin’ in the Wind’ 3절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그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위를 올려다보아야/ 하늘을 볼 수 있을까?/ 그래, 얼마나 많은 귀를 가지고 있어야/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그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 속에 흐르고 있다네/ 그 대답은 바람 속에 흐르고 있다네.”

내용은 단호하되 결론은 슬쩍 감춘다. 그러나 그 결론은 오히려 깊은 울림을 준다. 더구나 그의 졸린 듯 읊조리는 목소리와 기타 반주를 함께 들으면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연가와도 같고, 때로는 어느 노교수의 재미 없는 철학 강의처럼도 들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얼마나 많은’이라는 단어의 반복이 주는 절박함과 결연함이 어둡고 불의한 세상을 향한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즉 이 노래 역시 ‘아름다운 저항시’인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현실을 보자. 얼마나 많은 극단과 극단이 대립하고 있는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어떤 분야도 조화롭게 어울려 있지 아니하고, 또 어떤 진영도 상대방의 가치와 의미를 인정하지 않는다. 무조건 물어뜯고, 조롱하고, 겁박하고, 선동한다. 절대 악과 절대 선의 전쟁터이다. 그렇다면, 좋다. 어차피 싸울 것이라면 상대의 틀린 것과 악한 것을 공격하라. 그리고 부당한 요구와 부정한 결탁에 저항하라. 그러나…. 그 방법만이 최선일까. 비겁하거나 눈치보는 것이 아닌, 아름다운 싸움은 없을까.

아름다운 저항시, 지금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덕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또 다른 의미와 무게로 다가온다.

-최현묵 대구문화 예술회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