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권력의 반대편에서
권력 경계하고 오류를 짚고
불편하고 겸손한 자리여야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초심으로 돌아가 반성하자
시인을 꿈꾸던 시절, 존재하는 이 땅의 이름들에게 어찌할 바 모르는 경이로움으로 서툰 발음을 시작할 때, 어느 시인에게나 섬광처럼 파블로 네루다의 이 시가 왔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떨며 떨리며 시를 처음 안았을 때 그때의 시인은 맑고 귀한 존재였으리라. 그리하여 시 안에 둥지를 틀고 세상을 배우게 되었으리라. 이어 삶의 우여곡절과 불가사의를 경험하며 울었고 비로소 고통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영혼 속에서 무언가 시작되고 있었어/ 열이 나서 잃어버린 날개/ 나는 내 나름대로 해 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어렴풋한 첫 구절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무의미”.
무언가 시작되고 있었으니까. 다르게 살아야 할 운명을 감지했으니까. 그리하여 시인은 다짐하였을 것이다. 삶의 어떤 순간에도 시의 본질에 충실하고 삶의 진실을 말하는 쪽에 서리라고. 그리고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안락한 쪽이 아니라 춥고 외로운 길일 거라고 수천 번 새겼을 것이다.
“그리고 나/ 그 하찮은 존재는 그 큰 별들과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나는 별들과 함께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려버렸어”
심연은 무엇일까? 심연은 심연을 보려고 노력하는 자에게만 감지되는 보이지 않는 어떤 지점일 것이다. 몇 단락 네루다의 시를 인용하며 스스로 다짐하는 것은 시인으로서의 초심을 일깨우기 위한 일인지 모른다. 작금 인터넷과 뉴스를 어지럽힌 문인, 시인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논란에 같은 시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을 속죄하는 뜻이라 하겠다. 시인에게 권력이 있다고 생각한 것부터 잘못된 일이다. 시인의 자리는 권력의 반대편, 다시 말하면 권력을 경계하고 권력의 오류를 말해주는 자리이며 또한 시인의 자리는 편안하고 우월한 자리가 아니라 불편하고 겸손한 자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의 시인들은 다 어디에 갔는가? 꽃 한 송이 피우는 일이나 해 지는 붉은 서산을 보며 눈자위를 붉히던 두근거리던 열정은 다 어디에 갔는가? 문학상의 그늘을 따라다니는 일이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문단카르텔의 일부가 된 타락한 지성은 무어라 설명할 것인가. “나는 그 일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외치던 필경사 바틀비의 정의가 그립다. 순열한 열정으로 찬 방에 앉아서 원고지와 사투를 벌이던 아름다움이 그립다. 시인이여, 너무 평탄하고 너무 안락하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냉철하게 뒤돌아보며 의심하고 부정하도록 하자.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비단 시인뿐만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이에게도 강조해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를 실망하게 하고 아프게 하는 일들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생각해 보는 일이 필요할 때다. 닭과 말에 대한 이야기 하나를 해 보려 한다. 닭들이 모이를 먹고 있는데 서로 나는 쌀이 좋아, 나는 밀이 좋아, 저녁이면 닭볶음탕이 될지도 모르는 일인데. 반대로 마구간의 말들은 한 마리가 아프면 다른 말들이 밥을 먹지 않는다. 어떤 삶에서는 악취가 나고 어떤 삶에서는 향기가 난다.
‘천강성이란 별은 길방을 비추기 위해 자신은 흉방에 위치한다’고 한다. 시인의 자리가 그 쪽이다. 또한 시인은 세상의 존재와 삶에게 빚진 자들이다. 사물과 대상의 본심을 찾아 성실하고 내밀하게 묘사하고 말해야 하는 빚을 진 자들이다. 그러기 위해 시인의 자세는 낮아야 하며, 그들은 한 톨 먼지도 일으키지 않게 숨소리마저 낮춰야 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무슨 권리로 약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허위를 행하였을까. 시는 아픈 것이고 앓는 것이며 시인은 더 아프고 더 앓아야 하는 자이다. 길가 풀잎들에마저 나도 무슨 잘못인가를 했는데 그 일을 곰곰 반성해봐야 하겠다.
-이규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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