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얘기 하나. 이달 초쯤 CNN을 보다가 ‘웃픈’ 장면을 목격했다. “트럼프 당선이 전혀 놀랍지 않다”는 원조 트럼프 지지자인 보통 사람 몇몇이 출연한 일종의 토크쇼였다. 한 지지자가 “오바마 대통령이 우리의 신성한 투표권을 불법체류자 수백만 명에게 줘 버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어디서 그런 (틀린) 정보를 얻었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아마도 CNN, 아니 CNN 페이스북에서 본 게 분명하다”고 우겼다. 방송 중 스마트폰 검색 결과 그런 기사는 찾을 수 없었지만 이 지지자는 끝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들 마음 속엔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저 트럼프는 옳고 오바마는 틀린 것이므로.
이번엔 한국 얘기. 요즘 뜬다는 덴마크식 라이프스타일인 ‘휘게’ 관련 기사를 최근 내보낸 적이 있다. 가족을 비롯한 다른 이를 배려하고 함께하겠다는 소박한 마음만으로도 따뜻한 행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게 기사의 핵심이었다. 탄핵 정국에 이런저런 이유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기사라고 생각했는데 상상도 하지 못한 댓글 공격을 받았다. 막무가내로 ‘휘게 좋아하네’ ‘헬조선’ ‘사대주의’ ‘쓰레기’ ‘이명박근혜’라는 유의 문구를 써 가며 악플을 단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 시국에 왜 한국 실정과 맞지 않는 행복타령이냐는 투였다. 그걸 보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들에겐 기사 내용이 뭐든 그저 남 탓 하며 자신만의 잣대를 들이대는 게 중요할 뿐이라고.
미국과 한국에서 본 두 사례는 일견 상관없어 보인다. 하지만 나만 옳다는 식의 독선적 마음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주 많이 닮아 있다. 2008년 진보와 보수의 도덕적 뿌리에 대한 TED 강연으로 명성을 얻은 조너선 하이트 뉴욕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바른 마음』에서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단죄하는 ‘옳다는 마음(The Righteous Mind)’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인간은 이성적으로 판단한 후 행동하는 게 아니라 옳고 그름을 먼저 직감한 후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 나중에 근거를 만들어 내는데, 내가 속한 집단을 지지하는 것이라면 뭐든 믿는 게 원래 인간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편가르기 현상은 점점 더 심화한다.
서로 옳다니 갈등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하이트 교수는 “민주주의는 차이를 없애는 게 아니라 견해차를 존중하는 것”이라며 “의견을 표현하는 데 있어 자유를 느껴야 건강한 사회”라고 했다. “어느 한 편을 악마로 내모는 태도엔 다 같이 반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우리 사회는 과연 어디쯤에 있을까.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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