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닿을 수 없는 저기 어딘가 오늘도 넌 숨쉬고 있지만,
너와 머물던 작은 의자 위엔 같은 모습의 바람이 지나네..
너는 떠나며, 마치 날 떠나가듯이 멀리 손을 흔들며
언젠간 추억에 남겨져 갈꺼라고..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루어져 가기를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속에 머문 그대이기에.....
'네버엔딩 스토리' 노랫말을 보면 장소가 주는 추억을 느끼게 된다.
지난 금요일 부모님과 작은아이 넷이서 추억을 추억하는 시간을 가졋다. 점심 같이할 요량으로 구미에서 출발했는데 단풍도 좋고 어디라도 가자고 나선 길이 고향집 가듯 부모님과 함께한 추억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이곳은 1978년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대구로 이사간 집터다. 포크레인이 밀어붙이다가 우리가 올 걸 알고 쉬고 있는 중이었달까. ㅎㅎ 저 사라진 집은 지금의 내 나이보다 젊었던 부모님이 시골에서 농사만 지으시다가 논밭 팔아서 장만한 집이었다.
한참을지나치지 못하고 그 터를 보고 있는데 건너편 아줌마가 엄마 아버지를 알아보셨다.
옛날 이야기가 나왔고 뒷집 소식도 전해 주셨다.
저 뒷 집 나무는 무화과나무인데 학창 시절 완적히 익어서 길가에 뚝뚝 떨어지기도 했다.
저 골목길에 다 의자를 내 놓고 기타를 배우던 시절도 있었다.
뒷집 오빠가 팝송을 한글로 써가지고 와서 가르쳐 주었는데 지금도 그 곡들은 잊지 않고 있다.
골목길을 드나들었던 수 많은 발자국들, 다 가늠하지도 못하는 무수한 추억,
저 장소 저 공간에서 우리 가족의 꿈도 영글어갔다.
나는 이 집을 주제로 수필을 쓴 적도 있다.
계대 사거리
고가 도로가 서문시장쪽으로 지나고 있다.
수십 수백번을 드나들던 길들..
대건고등학교 쪽으로 가는 성모당 가는 길
이길은 참 많이도 걸어 다닌 길이다.
남문시장 몇몇 떡집만 남아있고 상가 점포는 묻 닫은 곳이 많았다
남문시장 맞은 편 헌 책방이 아직도 몇군데 있었다.
저 길도 참 많이 걸어다닌 길이다.
이곳은 노태우 생가다.
팔공산 순환도로에 있는 노태우 생가다
팔공산 단풍이 한창이다.
특히 순환도로는 장관이었다.
안가겠다고 우기시다 나오고보니 팔공산 단풍까지 제대로 즐기시는 부모님
어른들은 반대다 좋으면서 됐다 괜찮다 하신다.
작은 아이는 이런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나중에 또 한세월이 지나고 나면 나도 그런 모습일지
원없이 다니고 먹고 마시고 하고 싶은 일 다 하는 세월을 살고 있는데
이 세월이 어찌 부모님 은혜가 아니겠는지
그럼에도 자꾸 잊는다
효도는 흉내만 내도 효도라는 데 그것도 못하고 있다
돌아와서 남편에게 전화해 나를 보내주어 고맙다고 전화 하는 엄마
부모맘도 세대차이가 날까
미안했다. 그냥 죄송 스러웠다.
추억은 장소에 그대로 남아있다
사람도 그 사람이 궁금하면 그곳에 가도 된다
함께 가고 나눌 수 있다는 건 행복한 되돌아가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