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어느 날의 열차표는 역방향이다

구름뜰 2017. 5. 27. 11:27

 


ktx 타고 간다

역방향에 앉아

차창 밖을 보며 간다

모든 다가오는 것이 지나간 것이다

지나간 것만 보고 간다

보이는 게 한 물 간 것 뿐인데

새로운 것을 목표하며 간다

악조건이다

같은 시간 같은 목적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좌석이 생이라면

나의 생 출발부터 누군가에게 밀렸음이다

오, 차별 받은 내 좌석, 불리한 내 여정

이건 자연스레 피 돌리는 내 박동과는 다른 일

여학교 때 단체로 맞춘 교복 중에

내 것에만 나있던 흠결과도 다른 일

방향이란 원래 누구의 점유물이 아닐진대

누군가 차지하고 남은 방향

내자리라 하고 간다

남들이 눈으로 세상을 볼 때

등으로 세상을 더듬는 자리

내 자리 비좁고 속 울렁겨려도

순방향으로 꾸고 싶은 꿈 하나는

고속레일보다 뜨거워

코스모스처럼 흔들리며 가지만

도착하면 그 뿐, 누가

타고 온 방향을 묻겠는가 

- 이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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