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연필심으로 쓰이는 흑연과 다이아몬드의 성분 원소가 같다는 말을 들어 보신 적 있는지요? 흑연도 다이아몬드같이 탄소 원자로 이루어져 있긴 한데 흑연의 원자들은 단단히 결합된 다이아몬드와는 달리 서로 층을 이루면서 결합돼 있다고 합니다. 바로 그 성질 때문에 겹겹의 섬유로 만들어진 미세한 종이 표면에 흑연 가루가 달라붙어서 글을 쓸 수 있는 것이고요. ‘문구의 과학’이란 책을 읽다가 알게 된 사실입니다. 흑연의 결합구조가 다이아몬드와 달라서 참 다행이지 않습니까.
때로는 연필과 종이만 있어도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좁은 방에 오래 있을 때나 기분이 가라앉을 때, 혹은 가슴을 뒤흔드는 문장을 만난 책을 덮고 났을 때. 며칠 전에 ‘무서운 슬픔’이라는 시를 읽다가 허리를 곧추세웠습니다. “뱀은 모르겠지, 앉아서 쉬는 기분/누워서 자는 기분/풀썩, 바닥에 주저앉는 때와 팔다리가 사라진 듯 쓰러져 바닥을 뒹구는 때”. 시는 이렇게 끝납니다. “뱀이 지나가듯, 순식간에 그 집 불이 꺼지는 이유”. 갑자기 누가 불을 끈 듯 사위가 고요해졌습니다. 시에서 느낀 무서운 슬픔, 무서운 아름다움이 스쳐 지나간 것일지도요.
쓰다, 읊다, 짓다, 낭송하다. 시(詩)에 쓰이는 동사들은 주어를 필요로 합니다. 당신은 시를 쓴다, 그는 시를 낭송한다처럼. 어디에나 연필과 종이가 있습니다. 짧게라도 일기를 쓰면 그건 생활의 시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요. 서사문학의 시작을 혼잣말에서 찾아볼 수 있듯. 쓴 말보다 쓰지 않은 말이 중요할 때가 있지요. 뭔가 읽거나 쓰다 보면 그래서 더 사색하게 되는 것 같고요. 생은 반드시 아플 때가 있습니다. 마음을 쉬게 하면서 또 채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를 읽고 쓰는 일이 아니더라도. 온전히 좋은, 가슴을 뛰게 하는 게 하나쯤 있으면 더 살아갈 만할 것 같습니다.
종이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얇은 책이지만, 파블로 네루다 시집 제목처럼 ‘충만한 힘’을 가진 시집 이야기로 연재를 마칩니다. 정현종 시인의 ‘인사’라는 시가 있습니다. “모든 인사는 시이다. 그것이 반갑고 정답고 맑은 것이라면.” 독자들께 정답고 맑은 인사를 보냅니다. <끝>
-조경란의 사물이야기
* 조경란 소설가가 '사물 이야기' 연재를 마치면서 '시집' 얘기를 하고 있다.
왜 시일까
그만큼 시일게다
내게도 시는 난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난제다
버릴수도 가질수도 없는
탐하지만 조금도 다가서지 못하는 당신처럼..
서재에 꽂힌 시집들은 두께만 봐도
압축의 전형이다
아니 쓰고 싶지는 않고
쓰자니 노력이 부족해 어렵기만 하고
쓰놓은 글들은 내 배설물 같아서
차마 어디 내놓을 수도 없고
잘된 시를 보면
그래도 또 쓰고 싶고....
이 영원한 난제를 어쩌면 좋을까
시를
나는 짝사랑이라는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내 부족함만 알게해주는 시 앞에서
나는 언제나 작아진다
구구단 2단도 모르는
어른이 되어 있는 느낌이다
부끄러운걸
부끄러운 줄 아는것
그것 만이라도 다행이라 생각할까
또 빠져나갈 구멍만 찾는다
사랑이라 해 놓고....
2017,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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