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삼월에 눈이 오면 2

구름뜰 2018. 3. 21. 08:19

 


삼월 두번째 눈이다. 우듬지까지 사람손으로는 쌓아 올릴래도 불가능한 높이로 눈을 이고 있다. 묘기가 따로 없다. 눈이오는 동안 바람한점 없었다는 얘기같고, 모두가 숨죽인 것 같은 모습이다.

해가 뜨면서 가로수 전깃줄 가리지 않고 이고 있던 주먹같은 눈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후두둑 툭 후두둑 툭 멀리서 봐도 몸서리 치는 나무들이 보인다. 얼마나 무거웠을꼬 아침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꼬, 봄 눈은 작물들에겐 비와는 다른 풍요로움 같다. 한차레 겨울의 장례식이라면 봄은 그 위에 다시 솟는 생명, 그래서 황무지에서 '사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지 모른다.




 


겨울에는 정작 이렇게 많이 내린 날도 없었다.


오늘 새벽, 김천구미역사로 아이를 배웅해야 해서 여섯시쯤 주차장을 나서다 깜짝 놀랐다. 동시에 덜컥 겁이 났다. 눈이 내리고 있었고 여명속이었고 갈길은 멀고, ktx는 분명히 정해진 시간에 오고  갈 것이다.  하지만 이내 누군가 지금 내가 갈 길을 먼저 간 이가 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신호 대기 중인 차가 있으면 속도를 줄여서 달릴 수밖에 없었다. 도로는 한산했다. 


구미대학교를 지나면서 외곽도로라 설경이 장관이었다. 아는 길이고 익숙한 길이지만 눈이 만들어낸 새로운 세상속으로 내가 들어가는 듯 했다.  


경부고속도로와 경계한 메타쉐콰이어나무 우듬지 살핏줄까지 드러난 것들을 보는 일이란. 티끌하나도 놓치지 않고 간밤에 눈이 그려낸 세상이었다.




 


가는 길이 급해서 오는 길에 구미대학교 앞 버스정류장 부근에 차를 세웠다.




 

이런 곳에 혼자 덩그러니 서 있어 보는 일이란..

삼월 눈이 준 선물이다.


 

 




 

 


아파트에 주차하고 집으로 바로 들어갈수 없어서 아파트를 한 바퀴 돌았다. 

년중 한 두번 있을까 말까한 이 순간을 놓칠수는 없었다. 




 


산수유꽃에 눈이 함박지게도 내렸다.

저 산수유도 눈을 상상이라도 해 보았을까. 

 


 


'봄을 시샘하는 날 육성으로 시 한수 부탁해도 될까요? ' 멀리 전주에서 지인 스님의 문자가 왔다. 

눈 때문에 생각났을까. 시샘이라고 했지만 나는 오늘 신새벽 길을 다녀오면서 먼저간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실감했다. 뒤 따르는 건 참 편한 일이다. 앞바퀴만 보며 가면 되니까. 눈길에도 달릴 수 있고,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던 건 그 길을 먼저간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선자들을 시샘하거나 욕하기도 한다. 세월 지나 어느 순간 내 시차가 그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했을까 .그때 그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도 된다. 


교만은 남의 일 같고, 겸손은 내일 같지만

그게 어찌 남의 일이기만 하고 내 일이기만 할까. 

누가 그런 일에서 자유로울까. 

돌아보면 부끄럽고 잊고 싶은 일들이 나 아니었으면 싶은 일들이 나를 키우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조금 부족하고 추울 때 나는 더 잘자라는지도 모른다.

이른 봄의 매화 산수유처럼.



 

눈은 왜 밤을 좋아하는지.

왜 잠든시간에 오는지


먼데서 어떤 사람이 오기로 했다면, 그것도 아주 먼곳에서 오기로했다면

눈온 아침을 맞고 기다려야 하는 이는, 세상이 하얗겠다.ㅎㅎ



 


 

 


시인은 색칠하기 좋아서 밤에 오는거라고 했다.

내 생각엔 온 세상을 덮으니 부끄러워서 밤이런가 싶다 

구름의 일이고 하늘의 일이기도 하겠지만... 




 


 


나무의 결, 잎의 결, 가지의 결. 바람의 결까지 모든 결들이 깨어나고 있다.

 


 


 주차된 차에 내린 눈을 봐도 10센티는 넘어 보인다.



 


 

 

 

 





 



 

 


강아지처럼 쏘다닌 새벽길이었다.

덕분에 아름다운 풍경이 남았다



 아래 사진은 김천 혁신도시 일곱시 이전 풍경이다.


 





신호대기중에 본 풍경, 젊은 여성 둘이서 눈을 맞으며 얼싸안고 좋아하는 모습이다. 저둘은 어디있다가 나온건지. 강아지처럼 팔짝팔짝 안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그렇게 한 참을.. 보기만 해도 기분좋은...



 


 

 



경칩 지나고 춘분이다. 농사 준비시기다. 오늘부터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고 한다. 

하루 종일 눈때문에 풍성한 하루였다.



 


청도에서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시누이가 화단의  설중매 사진을 보내왔다.

이렇게 마음 써주시는 걸 보면 그에 못미치는 것 같아서 언제나 미안하다.








 

맛있는 유혹이다.

지척이었으면 당장 달려가서 하루 종일 여우나는 산골얘기를 하면서 놀다 왔으련만....



 


아래 사진은 부산에서 보내온 사진이다



 

병원에 근무하는 친구가 보내온 사진인데 아마도 병원 주변 풍경같기도 하다.



 



눈이 내리고 들썩들썩 먼데 가까운 데 사람들이 정을 나눈다.

사는 곳이 달라도 마음이면 뭐든 가능한 세월을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살아있다는 건 지난 겨울이 아무리 추웠더라도 꽃을 피워내는 일 아닐까. 

정 내는 것도 꽃이고, 마음 내는 것도 꽃이다. 세상이 눈꽃으로 눈부시다..



 2018,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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