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아려 눈을 감네
ㅡ이호우 (현대문학 1962년)
달밤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올 기약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淨化)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趙雄傳)에 잠들던 그날 밤도
할버진 율(律)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이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ㅡ이호우
*난 봉오리 며칠을 미적이더니
한 잎 한 잎 곱게도 피었다
너를 망설이는 게 내 일이라 여겼을 때
봄 들판은 일제히 일어났었지
누가 우리를 봄 했을까
아침마다 서향으로 눕는 그림자는
우듬지까지 붉어졌다네
벗은 나무가 산을 더하고
열린 꽃은 봄을 더했네
우리가 함께 피어가는 중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