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개화

구름뜰 2020. 3. 5. 12:18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아려 눈을 감네

ㅡ이호우 (현대문학 1962년)

 

달밤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올 기약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淨化)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趙雄傳)에 잠들던 그날 밤도

할버진 율(律)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이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ㅡ이호우

 

 

*난 봉오리 며칠을 미적이더니

한 잎 한 잎 곱게도 피었다

 

너를 망설이는 게 내 일이라 여겼을 때

봄 들판은 일제히 일어났었지

 

누가 우리를 봄 했을까

 

아침마다 서향으로 눕는 그림자는

우듬지까지 붉어졌다네

 

벗은 나무가 산을 더하고

열린 꽃은 봄을 더했네

 

우리가 함께 피어가는 중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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