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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최고의 피서는

구름뜰 2020. 8. 12. 10:06

어디론가 멀리 가고 싶다고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하니 기다렸다는 듯 너도나도 공감의 반응을 보인다. 마음 맞는 이들과 미지의 곳으로 가보자는 모의는 공염불이라도 즐겁다. 올해는 여러 이유로 피서에 대한 열기가 실종되었지만 그래도 여름은 떠나야 제맛인 계절이다. 여름이 가기 전에 멀리 한번 다녀와 보면 어떨까. 저기 멀리 우주라면.

좁은 의미의 우주는 지구를 둘러싼 대기권 밖 지상 118㎞ 높이 이상의 공간이다. 멀리는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와 이웃한, 빛의 속도로 250만 년이 걸리는 안드로메다 은하까지 가늠해볼 수 있으나 우주에는 1천억 개가 넘는 별을 가진 은하가 1천억 개도 넘게 있으니 넓은 의미에서 우주는 헤아릴 수 없다.

지상 400㎞ 높이는 어떨까. 그곳에는 시속 2만8천㎞의 속도로 90분마다 한 바퀴씩 지구를 돌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이 있다.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협력해 건설해 놓은 축구장만 한 크기의 우주인 거주 공간이다. ISS는 더 먼 우주로 나가기 위한 중간 기지이며 그곳에서 우주에서의 생존과 현상을 밝히기 위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ISS로 가기 위해 카자흐스탄에 있는 바이코누르 발사기지로 향한다. 그곳에서 러시아제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갈 것이다. 좀 전에 저압 상태 적응을 위해 여압복을 갖춰 입었다. 몸을 구겨 넣어야 할 정도로 비좁은 우주선 귀환 모듈에 올라타 준비 완료를 외친다. 점화. 연료와 산화제가 폭발해 엄청난 굉음과 함께 로켓이 요동친다. 화염을 뿜으며 추진력을 얻은 로켓은 온몸에 압도감을 전달한다. 곧이어 하단 부스터가 떨어져 나가고 로켓이 수직 상승을 계속한다. 지구 중력의 세 배가 되는 G포스로 몸이 짓눌려 숨을 쉬기조차 힘들다. 페어링이 분리되고 바깥이 보인다. 그도 잠시 2단과 3단의 분리를 위한 또 다른 충격이 이어진다. 잠시 후 주위가 고요하다. 우주선이 지구 중심의 저궤도를 돌기 시작한 것이다. 발사 후 십 분이 되지 않아서다. 조금씩 추력을 더해 궤도를 상승시킨다. 태양전지판을 번쩍이며 우주정거장이 지나간다. 속도를 더해 그것을 앞지른다. 그리고 180° 유턴. 도킹 포트가 보인다. 철컥. 성공이다. 드디어 육중한 우주정거장의 해치가 열린다.

최근 국제우주정거장 도킹에 성공한 민간 우주산업체 스페이스X가 개발한 유인우주선 크루드래곤이 체류 임무까지 마치고 지난주 무사히 지구로 귀환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주도해온 우주개발사업이 민간 영역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로써 그동안 정체되었던 우주 탐사는 동력을 얻게 되었다. 오랫동안 그려오던 우주 관광 시대도 열리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아직 먼 나라 이야기지만. 스페이스X는 내년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우주 관광을 시작한다고 한다. 열흘간 우주에 다녀오는 비용이 600억원이 넘는다니.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데 천문학적 비용까지 드는 여행을 가려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있다.

ISS 내부는 무중력 상태다. 엄밀히 말해 지구 중력으로 인해 지구를 향해 떨어지고 있는 상태다. 그것이 추락하지 않고 지구 중심의 궤도를 도는 이유는 중력을 상쇄할 만큼 알맞게 빠른 속도로 날고 있어서다. 그곳에서는 인체의 장기와 혈액조차 제 위치를 잡지 못한다. 밀폐된 환경으로 호흡에 의한 이산화탄소 증가도 문제다. 신선한 물을 구할 수 없어 몸에서 나온 물도 증류해 사용한다. 근육과 뼈의 감소뿐 아니라 시력 저하, 방사선 노출로 인한 위험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우주에 가보려는 이유는 무얼까.

ISS에서 1년간 체류하고 돌아온 우주인 스콧 켈리는 그의 저서 '인듀어런스'에서 우주에서의 삶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에메랄드빛으로 물든 짙고 푸른 지구를 내려다보면 아웅다웅 다투며 살아가는 지구에서의 삶이 보다 넓은 관점으로 바라봐진다고. 그리고 자신이 가진 모든 수완을 발휘해 생존하고 있다는 느낌, 살면서 어떠한 난관에 부딪혀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느낌, 살아 있는 하루하루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매미 소리 잦아들 무렵 까마득히 먼 우주가 내 마음에도 있다는 걸 느낀다면 올여름 최고의 피서를 다녀온 게 아닐까.
ㅡ백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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