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사람들
옥이네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가끔 하시던 말이 생각난다.
"사람이 뮈긴 뭐야. 걸어댕기는 똥공장이지."
기막힌 인생관이다. 만약 이 말을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들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부처님은 하늘과 땅 사이에 오직 나만이 존재한다고 하셨고, 예수님도 사람은 아름다운 꽃송이보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보다 더욱 귀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다. 공자님 역시 이 세상 만물 중에 가장 귀한 것이 사람이라 했고, 서양 어느 철학자는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고상한 말도 했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을 옥이네 할머니는 왜 하필이면 '걸어 다니는 똥공장'이란 자조 섞인 말을 했을까?
"자고 나면 하루 종일 똥감 장만하느라고 등이 굽도록 일하는 벌거지지." 옥이네 할머니는 덧붙여 이렇게도 말했다. 우리 동네 시내미골이란 골짜기 양지에 넓은 공동묘지가 있다. 옥이네 할머니 말대로라면 똥공장 무덤이 즐비하게 널린 곳이다. 나는 이 마을에거 거의 40년간 살았으니 마을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어느 정도는 안다. 모두가 한결같이 자고 나면 일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대단한 목숨이거나 고귀한 인간이란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다가 때가 되면 죽어 산천에 가서 묻힌다.
70년대 초, 마을 청년들 몇이서 새마을 농민복을 쫙쫙 다림질해서 입고 머리에 포마드 기름 바르고 십리길 버스 정류장까지 가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날 그렇게 차려입고 간 이유는 읍내에 유명 가수들의 공연 때문이었다. 장터 국밥집 아주머니 말에 따르면 "김새나라(세레나)랑 남진이랑 모두 온다 카드라." 안동이 생기고 나서 그만 사람이 모여든 건 처음이라고 했다. 상주, 종화, 예천, 의성처럼조금 먼 곳에서는 하루 먼저 도착해 여인숙 신세를 진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공설운동장에서 기타 정거장까지 넓은 길에는 사람으로 뒤덮여 자동차도 손수레도 몇 시간 동안 꼼짝 못했다고 한다.
그때까지도 농촌엔 전기가 없어 TV는커녕 집집마다 메주틀처럼 생긴 앰프 하나씩을 달아놓고 하루 종일 장터 유선방송사에서 보내는 똑같은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거기서 흘러나오는 유명가수들의 노래는 소리로만 들었지 얼굴은 몰랐다. 그러니 생전 처음 보게 된 연예인들의 공연은 그야말로 최고의 관심거리였다. 그때, 그 들뜬 가슴으로 공연장에 갔던 청년들은 모두 50대 장년이 되었다.
아랫마을 성민이네 할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한 삶이 일생동안 다섯 번 경사스런 일이 있는데 그때마다 돼지 한 마리씩 잡는다고 했다. 태어나서 첫돌 잔치 때 한 마리, 혼약식 때 한 마리, 결혼식 때, 그리고 나이들어 회갑 잔치 때, 죽어서 장례식을 치를 때, 이렇게 모두 다섯 마리의 돼지가 한 삶의 인간을 위해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70년대 겨울은 참 추웠다. 그 추운 겨울날 면사무소 앞마당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생활보호대상자에게쌀 배급을 주었다. 그걸 받기 위해 겨드랑이에 빈 포대자루 하나씩 기고 줄 서 기다렸다. 운이 좋아 앞줄에 섰던 사람들이 쌀 8킬로그램을 받아 나오면서 금메달 받은 선추처럼 활짝 웃던 모습, 그것이 길게줄서 기다리는 뒷사람들에겐 큰 부러움이었다. 날씨가 따뜻한 봄날은 조금 달랐다. 비록 줄을 서 있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냥 땅바닥에 앉아서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앉아서 그동안 있었던 집안 얘기도 나누는 등 오히려 한가한 시간을 즐기기도 했다.
나는 물 건너 마을에서 매번 오시는 할아버지와 자주 얘기를 나누었다. 할아버지한테는 벙어리에다 정박아인 열여덟 살짜리 딸 하나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한결같이 "그애 때문에 내가 죽으면 안 된다"고 걱정을 하셨다. 심청이네 아버지와는 반대 입장이었다.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벙어리 딸은 먼 데 어느 시설에 맡겨졌다.
그러고 나서 나도 생보자에서 빠져나왔다. 해방된 기분도 들었지만 한편은 그 사람들과 함께 거기 남아 있지 못해 미안하기도 했다. 그들은 비록 힘들게 남에게 기대어 살지만 죄짓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승용차도 없으니 공해도 안 일으키고, 물건을 별로 사지 않아 쓰레기도 안 만든다. 똑똑하지 못해서 비리를 저지르지 않고, 전쟁을 위해 대포나 미사일, 핵무기도 못 만든다.
세상에 그런 모자라는 사람들만 산다면 절대 무서운 전쟁 같은 건 없을 것 아닌가. 가끔 가다가 장터정류장에서 마을 사람들과 버스를 기다린다. 옷차림도 생김새도 모두 비슷해서 괜찮다. 시골 버스 정류장은 진짜 자동적으로 사회민주주의가 된다. 그런데 그 앞으로 지나 다니는 승용차가 문제인 것이다. 지루할 만큼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앞으로 뺀질뺀질한 승용차가 지나가면 저절로 모두의 눈길이 사팔뜨기가 된다. 약간은 기분이 상한다는 표정이다.
가끔가다가 아주 드물게 그런 뺀질뺀질한 승용차가 사람들 앞에 멈추어 설 때가 있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져서 볼라치면 자동차 앞 창문 유리 안에 있는 낯선 젊은이는 "아무개 할매요!" 부른다. 아마 도시에 나가 사는 그 마을 젊은이가 한 동네 할머니를 알아보고 차를 세운 것이다. "할매요!" 하고 불린 할머니는 갑자기 대통령이나 된 것처럼 으스대면서 승용차를 타고 가버린다.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은 꼭 버림받은 고아 같은 신세처럼 처량해진다.
세상이 점점 살벌해지면서 이제는 시골 버스에도 몰래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차비를 넣는 돈통 건너편에 동그란 단추 같은 것이 그 으스스한 카메라라는 것이다. 시골 조그만 우체국에도 그 몰래 카메라가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다. 나는 은행이 무서워 아예 우체국에 온라인 통장 하나를 사용했는데 오히려우체국이 더 무서운 곳이 되었다. 우리 모두 별 잘못 없이 죄인처럼 감시를 받으며 살고 있다.
그저께 뒷들 할매는 덧저고리 단추를 위칸을 빠뜨리고 다른 칸부터 잠가 모가지가 빼딱해 보였는데 그것도 몰래 카메라에 찍혔을까. 딸이 사다 줬다는 노랑색 스웨터를 멋부리며 입고 있던 지산댁 아주머니 역시 그 모양새 그대로 찍혔는지 궁금하다. 시골 사람들은 그래도 열심히 살고 있다. 특히 아주머니들은 아주 당당하다. 머리 모양은 하나같이 바가지 파마, 치마도 몸뻬도 똑같다. 화장하지 않은 얼굴은 알맞게 그을었고, 걷는 모습이 얼마나 자유로운가. 뚱뚱해질 걱정없이 바삐 일하고, 쉴 때면 맘껏 수다 떨고, 사르트르보다 더 자유롭게 산다.
일주일 전에 할머니 한 분이 또 돌아가셨다. 노인들이 하나 둘 씩 줄줄이 세상을 마감하고 먼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식민지에 시달리고 전쟁에 시달리고 군사독재에, 자본주의에 시달리며 한평생 손발이 갈쿠리처럼 억세어지도록 일만 하다 돌아가신 노인들.
옥이네 할머니는 이런 말씀도 하셨다. "인간 세상 천 층 만 층 구만층이제." 같은 똥공장인데도 역시 구만 층이나 될 만큼 불평등한 것이 세상인 것이다. 한숨이 절로 난다.
▷국내 동화의 영원한 명작으로 꼽히는 <강아지 똥>과 <몽실언니>의 저자인 권정생님. 경북 안동의 깊숙한 마을에서 넉넉지 않은 살림을 꾸려가는 님이지만, 그의 터를 밟고 간 누구라도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반성하게 만들고야 마는 순수의 힘을 님은 가지고 있다.(《작은 이야기》 이레, 2001. 7 · www.smallstory.co.kr)
'시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 아빠가 함께 읽는 시 (0) | 2008.06.28 |
---|---|
그녀의이름은 나의 어머니 (0) | 2008.06.28 |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0) | 2007.12.13 |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 (0) | 2007.10.20 |
다시 읽어도 가슴 뭉클한 이야기 (0) | 2007.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