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워 안 들어갈래
욕탕 앞 한 아이의 투정이다.
아이는 짜증낸다 이 물은 또 너무 차가워
난 안 들어갈래
이 아인 모르나 보다
너의 그림동화 속, 해님이 현실에선
얼마나 뜨거운 것인지
네가 좋아하는 장남감 로봇 쇳덩어리가 실제론
얼마나 차가운 것인지
살아가다 보면 이별의 아픔도
뜨거운 눈물로 씻어 버려야 할 때가 있다는 걸
세상의 위협과 유혹도 차가운 냉정함으로 이겨내야 한단 걸
이 아인 모르나 보다
뜨겁다고 피하고 차갑다고 돌아서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은 어쩌려고 그러냐
난 혼자서 속으로 아이에게 핀잔을 둔다
아이는 이내 바가지를 가져와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섞어버린다.
그리곤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신에게 들이붓는다.
그래 어쩌면 이 아이는 더 중요한 것을 알고 있는지 모른다
이 아름다운 조화를 말이다
뜨겁든 차갑든 그것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이별의 아픔도 세상의 위험도 쇳덩어리도 해님도
모두 한 데 섞어 버리면 되는 것을 어쩌면 이것이 세상 사는 방법일 수도 있겠지
어차피 인생이야 불꽃놀이처럼
환히 뜨겁게 빛나서 다시 차가운 어움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뜨거운 땅에 묻혀 차갑게 식혀질 것을
뜨겁든 차갑든 이세상 모두 한 데 섞여 잘만 살아가는 것을
신이 숨겨놓은 이 아름다운 조화를
아무 것도 모르는 이 아이는 어쩌면
다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구미고 에서 1년에 한번 나오는 교지 [문장골]4호 발간을 앞두고
작년 가을에 있었던 교내 공모전에 낸 詩다
샤워하다가 우연히 영감을 얻고 12시가 넘은 시간에 적었다는데, 기특하다.
원고를 들고 다음날 갔더니 담임선생님이
"공모전이 마감되었으니 담당선생님 찾아가 보라"는 말듣고
3학년 교실로 찾아가 제출한 원고다.
내일 졸업을 앞두고 전교생에게 한 권씩 나눠준 책이라며
책가방에도 넣지 않고 손에 들고 온 녀석,
책을 내 놓으며 오늘 뭐 없냐고 으쓱댄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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