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께 뇌경색이라는 병마가 찾아온 지 오늘로 만 6개월째다.
지난 8월 이후 어머님과 우리가족에게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지 생각만해도 아득해진다.
나는 또 어떻게 보냈는지......
지금의 어머님은 백지장처럼 말갛게 깨끗한 모습이다.
그렇게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낙서 한줄도 없는 말간 A4 종이 같은 상태라고 해야 할까.
고통은 감당할만큼 이라고 하더니 나는 그동안 잘 감내하며 지내온 것 같다.
병마는 내 일상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나는 예측조차도 없이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다른 공간 다른 시간속에서 지낼수 밖에 없는 시간을 보냈다. 호스피스의 역활을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그것은 나도 생각 못했던 나를 발견해나가는 시간이기도 했으며 그 때마다 조금씩 성숙해지는 나를 보기도 했다.
발병 초기에는 파도타기 하듯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어머님은 [영천한약]을 먹으면 한번에 낫는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병원에서는 간이 나빠질 그 약을 먹어선 안된다고 했지만 막무가내 였다. 하지만 당신의 막내 딸은 엄마를 위해 그 약을 만 하루만에 구해오셨다. 어머님이 그렇게 찾던 [영천한약] 먹지도 못할 약을 지어온 막내고모가 고맙다고 생각되었던것은 어머님의 태도에서 였다. 구해오지도 않고 못먹게 하던 때보다, 구해다 놓고 못 먹게 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 못먹는 것이 아니라 안먹는 것으로 이해를 하시고는 그 이후로는 한약으로 고집을 부리진 않으셨다.
증상이 호전되지 않자 답답하셨는지. 이러고 가만 있으면 어떡하냐고 침 이라도 맞게 해달라고 또 한참을 조르셨을때, 의사가 그랬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라고, "뇌경색환자는 4개월 정도되면 절로 호전되는 시기가 온다"고 이시기에 한방병원 같은 곳에 가면 "침을 맞아서 나았다"는 말이 나오는 거라고 그 때는" 집에 가만 있어도 나아지는 시기"라고..
의사 말처럼 신기하게도 나락으로 떨어지기만 하던 나날들이 서서히 4개월 정도 되자 안정기에 접어 들었다. 치매증상까지 호전되어서 평상심을 찾은듯한 모습으로 병원생활에 잘 적응하셨다.
그런 어머님이 지난 금요일 넘어지셨다.
새벽 2시에 머리를 다쳤다고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간병인과 함께 화장실 다녀와 침대에 올려드릴려고 했더니, 휠체어 가져오라고 해 휠체어 가지러 간 사이에 넘어졌다"고 자다가 날벼락이 이런 경우일 것이다. 혼비백산 차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뇌출혈 이란다.
7-8군데 출혈 흔적이 보였다. 의사는 위험하니 대구쪽 병원을 알아보란다. 앰블런스를 대기시켜놓고 대구쪽 대학병원 5개를 다 알아봐도 중환자실 자리가 없단다. 자리가 없은 건지 환자 상태를 듣고 받아주지 않는 건지.... 응급실 의사는 이번엔 서울쪽으로 알아봐주겠단다.
아침까지만, 아침까지만 기다려 보자고 했고. 마침 중환자실에 티오가 오늘중으로 있다는 연락이 왔고, 그렇게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일단락 짓게 되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응급실 의사는 중환자실의 불완전한 위험성에 대해 보호자에게 충분히 고지 시켜주었다.
중환자실이란, 병세가 5분 뒤도 예측이 안되는 환자들인지라 보호자들이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곳"이라고, 만약에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총망라하듯 설명해주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마음의 준비는 '이럴 때 이런 맘으로 맞는 거구나' 라는 생각까지 하며 멍한 기분으로 하루 하루를 보냈다.
그런 어머님이 다행히도 하루하루만큼씩 회복되어 가고 있다.
오늘 저녁 병문안에서 어머님은,
"내가 너를 이렇게 고생시켜서 어쩌니?"
"......"
살아있는 것을 미안해하는 어머님께 나는 아무것도 해 드릴 것이 없다.
내 손바닥만큼 작아진 어머님 얼굴을 쓰다듬어 드리는 것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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