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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에 의하면, 작가는 마흔이 넘어 글쓰기를 시작한 늦깎이이고 문학판과는 거리가 먼 건설회사 직원으로 중동의 사막 근무경력을 갖고 있었다. 인생의 반환점이라고도 하는 마흔의 나이에 시작하는 글쓰기에의 욕망은 무엇일까. 문학에 대한 욕망이란 자신의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 언제까지고 징그럽게 살아있는 밑불, 혹은 자신을 겨냥하여 장전된 위험한 탄환 같은 것이 아니던가. 이후 그가 뜸뜸이 생산해내는 작품들을 읽으면서 나는 능란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에 감탄하거나 간난한 인생살이의 갈피를 살피는 따스한 시선에 마음이 젖기도 하고 쓰디쓰면서 따뜻한 유머에 혼자 슬며시 미소짓기도 하였다.
삶의 적막감과 쓸쓸함을 폐가에서의 일광욕으로 살아내는 여자, 낡은 컴퓨터 한대를 얻기 위해 일생에서 가장 길고 고단한 하루의 여정을 치러낸 아버지와 아들, 이 약삭바르고 부박한 세상에서 우리들이 잃어버린 순정성과 인간적 면모를 지켜가는 진정한 의미의 협객 등…. 그의 소설들은 ‘보잘것없는 인생’ ‘별 볼일 없는 인간’ 들에 대한 예의지킴이고 달리 말하면 애정이며 연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해나 슬픔이라는 의미로 얼마든지 증폭될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다.
김병언의 소설을 읽노라면 생이 숨겨둔 덫에 치이거나 그 무자비한 손길에 따귀를 맞았거나 무참하게 할큄을 당한 자국이, 그 통절하고 쓰라린 기억이 이만치 거리를 두고 보인다. 그 ‘이만치의 거리’가 바로 위로이고 치유인 것을. 김병언의 소설에는, 애써 설명하거나 인과의 원리를 적용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아예 봉합해버린 부분과 텅 비워버린 부분들이 그냥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삶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대낮에 길가의 잡풀 속에서 늙은 여자가 왜 벌거벗고 일광욕을 하는가를 묻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내밀한 자기위로의 방식이 있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인생운영의 묘이기도 할 것이다.
◆『남태평양』(2007, 문학과지성사)=소설가 김병언(58)씨의 세 번째 창작집. 2007년 동인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하류인생들의 고난한 삶을 따뜻하게 보듬는 ‘아날로그를 위한 연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