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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뒤를 돌아보지 않게 되면서부터 사람도 문학도 한없이 가벼워지고 있다. 너무 가벼이 날아올라 아침 햇살 앞의 이슬처럼 흔적 없이 기화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질 무렵, 방현석의 소설을 만났다. 소설의 무대가 베트남인가 한국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살이가 어디라고 다르랴. 방현석의 인물들은 서슬 퍼런 구조조정 앞에서 내 한 몸 돌아보기도 힘든 세상에, 인간인 이상 저버릴 수 없는, 저버려서는 안 되는 사회적 대의를 짊어진 채 힘들게 걷고 있다. 자본주의화 되어가는 오늘의 베트남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해방전사의 슬픔에 목이 멘다. 그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목숨과 청춘을 바쳤을까. 과거의 모든 열정과 찌꺼기를 껴안은 채 역사의 격랑은 어딘가로 또 흘러가고 있다. 어쩌면 오늘의 보신(保身)은 먼 훗날 치욕이 될지도 모른다.
방현석의 소설은 남성적이다. 스스로의 과오에 대해서조차 추호의 변명도 없다. 그 냉철함을 1970년대 이후 오랜만에 우리 소설에서 다시 만났다. 그의 문장 또한 남성적이다. 난잡한 수사도 없이 정직하고 정확하다. 그가 다시 묵직한 이야기를 들고 이 가볍디가벼운 세상으로 돌아오길, 몇 년째 기다리는 중이다.
◆정지아=1965년 전남 구례 출생.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수료. 1990년 실천문학에서 『빨치산의 딸』 출간. 96년 ‘고욤나무’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 『행복』『봄빛』, 장편 『고구려 국선랑 을지소』. 이효석 문학상·2008년 올해의 소설상·한무숙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