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박경리 선생이 강원도 원주시 원구동 자택에서 글 쓰는 모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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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선생 장례는 한갓 문인장으로 시작했지만 전·현직 대통령부터 갓 쓴 시골노인까지 ‘민중적 애도’가 이어지며 자연스럽게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그런 전국적인 애도는 선생이 한국 문학사에 전무후무한 기념비로 설 21권짜리 대하소설 『토지』를 남겼다는 사실 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남편과 아들을 차례로 잃고 사위(시인 김지하)마저 생사가 위태로운 가운데 사마천을 모델 삼아 필사적으로 글쓰기에 매달린 선생의 모습에서 국민들은 굴곡의 역사에 강인하게 저항한 한국의 어머니를 본 것은 아닐까.
분명한 것은 1년이라는 ‘시간적 거리’가 남은 자들로 하여금 선생의 발자취를 찬찬히 되돌아 볼 여유를 가져다 줬다는 점일 게다. 신문·잡지 등에 실린 추모글 모음, 문학 연구서 등이 출간되고 추모 그림과 유품을 볼 수 있는 전시회도 열린다.
◆추모집·연구서 출간=토지문화재단은 각종 신문·잡지에 실린 추모글 40여 편을 모아 『봄날은 연두에 물들어』를 출간했다. 박완서·김병익·이근배·윤흥길·도종환·송호근·신경숙·공지영·공선옥·이문재 등 후배 문인·학자 글을 통해 사소하지만 좀처럼 이들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선생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진행중인 각종 추모사업도 간략하게 정리했다. 추모집은 비매품으로 2000부만 찍었지만 책을 구할 수 없느냐는 문의가 잇따라 재단이 해결책을 찾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씨가 펴낸 『박경리와 토지』(강)는 보다 냉정하게 선생의 문학 세계를 조명했다. 김씨는 『토지』가 지리산을 무대로 삼는다는 점에서 최명희 장편 『혼불』, 이병주 장편 『지리산』과 공통되지만 주제 면에서는 두 작품의 가운데 놓인다고 지적했다. 자연과 문화가 미분화된 『혼불』의 세계가 근대와의 갈등을 다룬 『토지』를 거쳐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는 『지리산』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연구서이지만 작품 인용이 많고 설명이 상세해 ‘깊이 있는 『토지』 해설서’로 봐도 무방하다.
24일까지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점에서 열리는 추모전에 전시된 책·호미·도자기 등 선생의 유품들. | |
◆1주기 추모전 개최=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점은 5∼24일 ‘박경리 1주기 특별전-박경리와 화가 김덕용’을 연다. 화가 김덕용(48)씨가 지난해 6월 출간된 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마로니에북스)에 그림을 그렸던 인연으로 마련한 추모전이다. 시집에 실린 삽화 10여점과 신작 20여점으로 전시가 꾸려졌다. 한국화를 전공한 김씨는 뒤주에 쓰였던 폐목 등 나무판에 질박하고 잔잔한 그림을 그린다. 화가는 “생전에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박선생 49제에 맞춰 나온 유고시집에 넣을 작품을 만들면서 그의 작가정신을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전시에는 고인이 평소 애용했던 싱거 재봉틀, 호미, 돋보기, 토지 원고, 도라지 담배 한 개비가 남아 있는 담배쌈지 등 유품과 사진도 나온다. 이 추모공간은 안상수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가 연출했다.
신준봉·권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