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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기법 그림- 김덕용

구름뜰 2009. 5. 5. 15:50
단청기법 그림으로 만나는 박경리 삶과 문학

1주기 특별전 ‘박경리와 화가 김덕용’

‘그러나 내 삶이
내 탓만은 아닌 것을 나는 안다
어쩌다가 글쓰는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고
고도와도 같고 암실과도 같은 공간
그곳이 길이 되어 주었고
스승이 되어 주었고
친구가 되어 나를 지켜주었다 ’ 박경리 선생의 시 ‘천성’ 중에서.
 

 동양화가 김덕용(48), 그는 최근 펴낸 소설가 박경리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 삽입된 그림 작업을 맡았다. 출판사에서 우리 것을 좋아하던 박경리 선생의 고졸한 안목에 맞는 작가를 찾다가 고가구나 고목재를 재활용해 단청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그를 찾아냈다. 나무에 그리다 보니 단청기법으로 그려도 그림은 지난 세월을 반추하듯 아스라하고 가물가물하다. 또렷하지 않은 그림은 추억처럼 따뜻하고 애틋한 마음을 일으킨다.

 

이런 인연으로 김 화백은 ‘박경리 선생 추모 1주년’을 맞아 24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점에서 ‘박경리 1주기 특별전-박경리와 화가 김덕용’ 전시회를 갖는다. 박경리 선생의 유품들도 시집에 실린 김 화백의 작품, 신작과 함께 전시된다. 1층에는 고인이 평소 사용했던 재봉틀, 호미, 안경, 몽블랑 만년필, 토지 육필 원고, 사전 등 유품이 연보식으로 배열된 사진과 함께 전시된다. 담배 쌈지로 쓴 지갑 안에는 도라지 담배 1개비가 남아 있는데, 박경리 선생이 금세라도 한 대 달라고 해 피울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고인은 경남 통영에서 1926년 태어났고, 진주여고를 졸업한 뒤 교사로 잠깐 일하다가 1955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문단에 ‘계산’으로 데뷔한 뒤 지난해 돌아갈 때까지 53년간 작가로 활동했다. 작가로 활동한 53년은 남편을 잃고, 외동딸을 키우며 살아온 시간이기도 하다. ‘내 삶이 온전치 못했기 때문에 글을 쓰게 됐다.’던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이 전시 공간은 홍익대 안상수 디자인학과 교수가 맡아 연출했다. 2층에는 김덕용의 삽화그림 10여점과 신작 20여점이 전시된다. 전시작은 모두 나무판에 전통 물감을 사용해 단청기법으로 그렸거나 자개를 박았다.

“유고시집 그림들은 작업을 맡은 뒤 다시 한 번 더 박 선생님의 작품을 읽으면서 형상화한 것들이에요. 회화적으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사람 만나기를 꺼리는 것은 저랑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또 작가로서 자신의 원초적인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셨다는 생각을 갖게 됐지요.”

얌전히 개켜진 색동 이불, 시골 어느 초등학교 졸업 기념사진, 부끄러운 듯 반쯤은 문 뒤에 몸을 감추고 내다보는 소녀 등 이미지 자체도 향수를 자극한다. 박경리 선생을 모델로 그린 삽화를 제외하고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그를 닮았다. 무덤덤하고 무표정해 보이지만 순진하고 순순한 이미지들이다. 김 화백은 “작가들의 작품활동은 자신을 찾고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02)519-0800.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