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님은 갔습니다.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황금(黃金)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盟誓)는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追憶)은나의 운명(運命)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사랑도 사람의 일이라,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希望)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沈默)을 휩싸고 돕니다.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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