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서 오히려 잊어먹은 맛깔스러운 유년의 풍경
소설가 공선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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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애란의 작품 속에서 은근히, 또하나의 ‘충청도 풍’을 본다. 작가는 어쩌면 유년시절을 오롯이 충청도 서산에서 보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나는 ‘오리지널 충청도 출신’이 아닌 ‘인천에서 태어나 서산에서 자란’ 사람의 충청도풍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순전한 충청도 사투리가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작가가 술술 풀어가는 이야기 곳곳에서 충청도 소읍의 풍경과 그 소읍에 깃들어 산 사람들의 정서가 배어나오고 있음을 나는 느꼈다. 어쩌면 김애란이 충청도 서산에서 유년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김애란의 이야기는 이렇게까지 맛깔스럽지는 않을거라는 느낌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내가 주목한 또 하나, 1980년생.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집주인에게 세를 낸 옆방 언니는 방 한 칸을 또 내게 세 주었다. 그 언니가 1980년에 애를 낳았는데, 지금 김애란과 동갑이다. 나는 김애란의 글을 읽으며, 자꾸 그 ‘아이’의 유년을 김애란의 유년과 겹쳐 생각하곤 했다. 그러니까 우리 세대는 피아노학원 같은 것은 상상도 못한 세대지만, 그 ‘아이’ 세대는 피아노학원에서 웅변도 같이 배운 세대인 것이고, 그리고 또 지금 아이들은 피아노학원에선 피아노만 배우는 세대인 것이다. 김애란의 작품에서 만나는 삶의 풍경들은 내 세대에게는 너무도 익숙해서 오히려 무심히 잊어먹은 풍경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얼굴을 붉히기도 하면서, 속으로 웃기도 하다가, 그 세대만의 치열한 삶의 이면이 도드라지게 양각된 작품을 읽고서는 어쩐지 미안해지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것이다.
◆『침이 고인다』(문학과지성사, 2007)=25세 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해 문단의 화제가 된 김애란의 두번째 창작집. 상처가 되었을 법한 유년의 기억을 신세대의 감수성으로 환하게 그려내는 작품들.
◆공선옥=19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을 온몸으로 겪은 광주 출신 1964년생.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 『멋진 한 세상』『명랑한 밤길』, 장편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등이 있다. 단편 ‘명랑한 밤길’로 2009년 오영수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