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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공선옥 <명랑한 밤길>

구름뜰 2009. 6. 9. 23:13

 상처받은 그들
어쩌자고 샅샅이 들춰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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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은 그동안 일관된 주제의식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그들의 힘겨운 삶을 생동감 넘치는 활달한 문체로 핍진하게 그려냈다. 곳곳에 작가의 체험을 녹여낸 사실적이면서도 진솔함을 잃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과 역동성은 차지고 구수한 표현력과 함께 이 작가의 문학적 성과를 유지한다. 그녀의 소설은 세련된 기교에 기댄 현란한 수식이 아닌 오로지 솔직함과 정직함을 근간으로 하며 이전에 비해 더욱 원숙하고 넓어진 관용의 정신을 엿보게 한다.

김주영씨는 “남자와 수컷이 (공선옥 소설 주인공에게) 준 상처가 너무 깊다”고 했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질병으로 때론 이혼으로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만 하는 가족들,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등 우리 주변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 절망적 현실이지만 그들은 현실을 왜곡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불행을 솔직히 인정하고 슬픔의 근원에까지 깊숙이 내려감으로써 치유와 정화의 힘을 얻기도 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가난과 소외와 절망을 얘기하지만 삶의 벼랑 끝에 선 그들을 통해 우리가 목도하게 되는 건 삶의 희망이며 용기라는 점에 이 소설의 가치를 상찬할 만하다.

『명랑한 밤길』은 가진 것 없고,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은 우리 주변의 소외 계층들, 즉 서민들의 고통스럽고 힘겨운 삶을 작가 특유의 입담과 활달한 필체로 잘 보여준다.

결코 명랑할 수 없는 현실, 어디 하나 녹록치 않은 비루한 현실이지만 『명랑한 밤길』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삶을 포기하거나 상처에 함몰당하지 않고 오히려 상처를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새기고 나아가 이웃의 아픔에도 따뜻하게 손을 내밀었다는 점에서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작가는 사회의 어두운 면, 혹은 불편한 진실을 들춰내면서도 결코 꼬이지 않은 시선으로 이들을 따뜻하게 감싼다.

영희와 문희와 인자, 서럽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그녀들-작가의 분신처럼 보이는 그녀들이 감내해야 할, 살아있음에 대한 대가 치고는 너무 가혹한 고통 앞에서 자꾸만 눈이 시리다. 삶의 속살들은 어쩌면 이리도 잔인한 것일까. 어쩌자고 작가는 이토록 잔인한 삶의 순간들을 놓치지도 않고, 또박또박 두 눈 부릅뜨고 적어낸 것일까. 등장인물들을 할퀴고 간 사건과 사고, 그네들을 수척하게 만드는 가난과 실패, 그리고 때로 고통의 근원처럼 보이는 남자들과 수컷들의 이야기를 그저 슬픈 인생사라 하기에는 그들의 상처가 너무 깊다. 미처 내지르지 못한 비명과도 같은 그들의 ‘명랑’-달리 어쩌겠는가.


◆『명랑한 밤길』(2007, 창비)=2006년 ‘작가가 선정한 올해의 소설’에서 최우수작으로 뽑힌 표제작 ‘명랑한 밤길’을 비롯해 단편 12편이 담겼다.

◆김주영=소설가. 1939년 경북 청송 출생. 역사소설 『객주』 『화척』 등을 썼다. 최근 그림소설 『똥친 막대기』, 상상우화집 『달나라 도둑』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