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히 알려진 대로 홍길동은 조선시대 양반 허균이 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렇다고 홍길동이 가상의 인물은 아니다. 홍길동은 실존 인물이다. 조선 중기 광주 무등산이나 영암 월출산 등지에 출몰했던 도적이다. 홍길동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되밟은 기록이, 홍길동의 고향으로 알려진 전남 장성에 가면 잘 정리돼 있다. 장성군은 아치실마을을 홍길동마을로 단장해 본격 관광산업을 도모하고 있다. 홍길동의 명성에 기댄 마케팅 전략이다. 강원도 강릉시도 홍길동을 내다 팔고 있다. 강릉은 허균의 고향이다.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문학작품과 관련한 명소를 곧잘 만난다. 해마다 9월이면 명소가 되는 강원도 평창군 봉평은 이효석 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먹고 산다. 이효석의 고향이 봉평이거니와 ‘메밀꽃 필 무렵’은 봉평장에서 벌어지는 장돌배기의 고단한 삶을 다룬 작품이다. 거기에 나오는 한 구절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는 두 눈으로 목격하지 않으면 묘사할 수 없는 천하의 절경이다. 봉평은, 문학작품을 가공해 관광 수익을 올리는 본보기 마을이다.
최근 경기도 양평을 다녀왔다. ‘소나기마을’이 건립됐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소나기마을은 황순원 소설 ‘소나기’에서 영감을 얻어 지은 문학 테마파크다. 황순원문학관(031-773-2299)에 들어가면 작가 황순원의 작품 세계와 생애를 소개한 전시관이 있고, 소설 ‘소나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이 상영되고 있다. 무엇보다 소나기마을은 소설 ‘소나기’의 주요 장면을 재현해 놓는 데 성공한 모습이었다. 소년이 소녀를 업고 건넌 징검다리, 오두막 등이 소나기마을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황순원 선생은 이북 출신이다. 작가의 태자리에 세운 여느 문학 명소와 소나기마을이 다른 점이다.
그런데 왜 하필 양평일까. ‘소나기’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 때문이다.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이 문장 하나가 양평 땅 깊숙한 산골짜기를 근사한 문학공원으로 바꿔 놓았다. 소설 안에서만 있던 세상이 눈앞에 생생히 펼쳐져 있다. 상상력의 힘이다.
손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