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뛰는 사물도 그의 언어 품에선 잔잔해진다
이 지면에 자신 때문에 불려나온 김사인 시인이 “얼마나 곤혹스러우실까” 걱정하면서도 전성태 작가는 내심 “많이 고소하다”고 너스레를 떤다. [중앙포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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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성정을 지닌 시인이 거의 스무 해 만에 떠듬거리며 불러낸 노래가『가만히 좋아하는』이다. 그 긴 ‘소강(小康)’의 시간에도 그는 시인이었다. 골방의 처사가 되어 진주 같은 문장을 찾아 읽고 주위에 돌려 권하기를 즐겼다. 바쁜 시속(時俗)이 놓치고 가는 값진 문사들의 손을 잡아주었고, 더러는 세상에 자리를 펴 주었다. 어린 동무들에게는 ‘시 쓰기는 생을 연금(鍊金)하는, 영혼을 단련하는 오래고 유력한 형식’이라고 몸으로 보여주기도 하였다. 몸과 마음을 바닥까지 다스리지 않고 내놓는 말과 글은 믿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선생의 육성은 홀가분하고 상쾌했다. 시인으로서 그에게는 소강의 세월이 없었다.
『가만히 좋아하는』은 다시 한 번 그 사실을 입증한다. 순정한 그의 시편들은 오래 전에 잃어버린 문학의 본디, 언어의 본래 쓰임새를 새로이 보게 한다. 사물을 곧게 바라보지만 마음은 사물에 에둘러서 가닿는다. 큰 목소리가 닿을 수 없는 지경까지 그의 고즈넉한 목소리는 전해진다. 어렵게 말하지 않고도 그의 시는 넓고 깊은 세계를 거느린다. 날뛰는 사물도 그의 언어의 품에서는 잔잔하다. 그래서 그의 언어는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다치지 않는다.
내 언어 너무 각박하고 삭막해지는 것 같아 고통스러울 때 그의 시편만큼 위로가 되고 가르침이 되는 스승도 없다. 그의 어조에 잇대어서 말문을 터볼 때도 있다. 영혼이 순정해지고, 일상이 종요로워지며, 인연이 소중해진다.
어디 공원이나 거리에서 핫둘핫둘, 배 꺼지게 뛸 때 흰 운동화 신은 양복쟁이 하나 배 위에 두 손 포개고 달빛 타는 거미처럼 가다말다 뭉그적거리고 있다면, 그이 김사인이 틀림없다. 잠시라도 가만히, 그와 보폭을 맞춰보시길 권한다.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 2006)=김사인(54) 시인의 두번째 시집. “누구도 핍박해본 적 없는 자의/빈 호주머니여//언제나 우리는 고향에 돌아가/그간의 일들을/울며 아버님께 여쭐 것인가”(‘코스모스’ 전문)
◆전성태(사진)=1969년 전남 고흥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나와 1994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매향』 『국경을 넘는 일』 『여자 이발사』 『늑대』, 평전 『김주열』 등이 있다. 신동엽창작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