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지금 사랑이 운명론을 향해 화살표를 가리키고 있다고 해도
결국 그 지점에서 담대하게 돌아서느냐,
비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불치의 슬픔 속으로 뛰어드느냐는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운명이 내 사랑을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운명적인 사랑을 할지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운명이 아니라 운명적인 선택이다.
조진국 < -사랑은 운명이 아니라 운명적인 선택이다>- 부분
삶의 여정은 선택의 연속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선택한것에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기 시작할즈음
어른이 되어간다는 느낌이 함께 들었던 것 같다.
선택에 책임이 있는줄도 몰랐던 시절 마음으로 먼저 가 닿는 것이 전부였던
그 시절을 우리는 '순수'라고 하지 않을까!
사랑에도 우정에도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어른이 되고 책임이 따르는 일들에 좀 더 이성적일수 있는게 아닐까.
그 시절 순수를 경험해보지 않고 어른이 되었다면
이사회에 많은 혼란이 올수도 있지 않을까. 특히 사랑전선에..
'사랑은 운명이 아니라 운명적인 선택이다.
' 사랑' 어른이 되고 운명적인 선택을 하는 사랑은 축복이다.
마음이 먼저가는 사랑도 선택으로 결정되는 운명..
기다려도 오지 않는 기다림도 있다는 걸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네가 없는 현재에서 과거의 너를 기다리고,
약속도 없는 장소에서 네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마음이 떠난 너를 마음을 다해 기다려도 소용없다는 걸 이제는 너무 잘 안다.
한 시간이 아니라 몇 시간이라도,
기다리면 오는 사람이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왜 그때는 미리 알지 못했을까.
조진국< -너한데 만은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 부분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순수한마음을 순수하지 않은 마음으로 다잡는 일이며
아픈가슴을 소리없는 울음으로도 삭일줄 알게도 되는 것이다.
사랑은 뛰는 심장 처럼,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하는 살아있음의 증거가 아닐까.
너무 사랑해서 가까이 갈 수가 없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힘들어질 것이다. 그래서 거짓말까지 한다.
"난 널 사랑하지 않아"
너는 이렇게 이상하게 삐뚤게 뻗어 나가는 마음의 넝쿨을 이해할 수 있을까.
조진국 <-버려진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 부분
" 난 널 사랑하지 않아"
거짓말까지 가능해지는 사랑.
이런 사랑은 얼마나 사랑하면 가능한 건지..
평생을 두고 이런 사랑을 해 보는 이는 몇이나 될까.
빛이 닿으면 무엇이든 빤짝인다.
운하의 탁한 물결도, 푸석한 나뭇잎도, 멋없이 뻗어 있는 현대식 건물도,
말라버린 눈물 자국까지도
그래서 사람들에게 와서 닿을 때 빛은 그냥 빛이 아니다.
저마다 다시 시작하고픈 사랑,
손에 잡히지 않는 꿈의 실현, 부서진 관계의 회복이라는 이름들로 바뀌어 반짝인다.
두사람이 사랑하게 되면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에게 빛이 된다.
푹 꺼지고 그늘져 있던 자리가 그 사람이 들어오면서부터 양지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사라지면, 그 사람이 있던 자리는 투명해진다.
그 자리가 투명해보이는 것은 빛이 살다 간 흔적 때문이다.
뜨거운 한여름을 열정적으로 울다가 날아간 매미의 얇고 투명한 껍질처럼,
그 투명한 빛의 껍질엔 슬픔이 어려 있다.
그 사람을 보내고 막 돌아서며 터지는 투명한 눈물 막과 비슷한 것이다.
차라리 캄캄한 어둠이면 아무것도 안 보이고 혼자라는 현실감도 더했을 것이다.
만지면 있을것 같고, 부르면 대답할 것 같지만 막상 만져도 없고, 불러봐도 대답이 없다.
그래서 투명함은 어둠보다 더 공허하고 잔인하다.
빛의 반대말은 어둠이 아니라 투명함이다.
엄밀히 따져보면 빗소리은 없다.
빗소리는 비가 무언가와 부딪쳤을 때 나는 소리다.
양철 지붕 위를 때리고 유리창에 닿아서 나는 소리,
우산 위를 굴러서 아스팔트에 떨어지면 얕은 잔디와 나뭇잎에 튀면서 빗방울이 되는 소리다.
신기하다 각각 다른 물체와 부딪히면 소란스러울 법도 한데
모이면 희한하게 하모니를 이루며 하나의 주제로 소리를 낸다.
그 소리의 주제는 오늘 내겐 그리움이다.
빗소리의 구조를 모르듯이,
그리움의 정체가 어떤 것인지도 알 수가 없다.
다만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재가 우리가 함께 저장한
기억의 어떤 부분과 부딪혀서 그리움의 빗소리를 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움은 슬픔 안에 있다.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다는 결핍에서부터 생기기 때문이다.
너를 보고 만지고 싶다는 그리움에 취해 처음으로 노트북을 펼쳤다.
너와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일기처럼, 소설처럼 써 내려갔다.
지금까지 찍어두었던 파리의 풍경들을 글 위에 얹어놓았다. 그럴 둣하다.
사소한 것이지만, 그동안 이런 걸 하고 싶었다는 충만감이 들었다.
새벽네시다. 진이 다 빠진다. 텅 빈 느낌이다. 하지만 허전함은 아니다.
휴대전화 배터리를 전부 활용한 느낌에 가깝다. 다시 충전기로 들어가고 싶다.
조진국 <-빛의 반대말은 어둠이 아니라 투명함이다>부분
'빗소리의 구조를 모르듯이
그리움의 정체가 어떤것인지도 나는 알수가 없다.'
빗소리와 그리움의 공통점을 이렇게 끼워 맞출수도 있는 건지.
그래서 비가오면 그리움같은 것들이 스멀스멀 물안개가 내려 앉듯이
내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일까.
대상이 무엇이든 그리움은 결핍에서 생성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곁에 있는 사람이 그리운 경우는 없으니까.
그대가 그리웠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만날 수 없었기에 가능한 말이니까.
그리움은 가슴에 내리는 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촉촉히 구석구석 젖어들지만,
내색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
그래서 그리움은 위로 받을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끌어 안고 살아야 하는 결핍인지도 모른다.
마음에 생긴 상처 자국도 아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걸
나이를 먹으면서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이름들이 하나씩 새겨지고 있었다.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
잊는 것이 더 좋을것 같아서 만나지 않는 사람들,
그들과 나 사이에 슬픈 사연들이 물길처럼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에 생긴 상처는 몸에 난 상처보다 훨씬 더 깊다.
흔적도 없다고,잊은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날 소나기에 씻긴 풀잎처럼 선명하게 클로즈업 되고
만지면 생채기 낼것같은 풀잎이 선명한 흔적으로 드러날때.
삶의 흔적이기에 더욱 소중한 것으로 끌어안게 되며 감내하게 된다.
내 삶이고, 내 상처이기에 더욱 소중한,
그래서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고, 깊어지며 성숙케도 하는
마음에 상처는 내 삶의 자양분이 되어 주는 것이다.
어느날 또 다른 생채기가 생기더라도
연고가 필요없는 그런 상황을 맞게도 된다.
얼굴에 하나씩 주름살이 생겨나는 건,
그냥 복구되지 않는 마음의 흔적이라는 걸 어느덧 알게 되었다.
너는 모를 것이다. 나는 너무 행복하면 눈을 감게 된다.
이 행복이 달아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다.
나는 너무 사랑하면 입을 다문다.
한 번 불어버리면 다시는 그 말과 똑같은 느낌으로는 부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너는 이렇게 아프게 사랑하는 내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까.
조진국 <-나이가 들수록 상처를 회복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부분
나이가 들어갈수록 복구되지 않는 주름살은 늘 지 몰라도
마음은 더욱 유연해지고 사고는 풍부해진다.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사람.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
잊는 것이 더 좋을것 같아서 만나지 않는 사람,
이런 아픔들은 없으면 좋겠지만,
있어도, 내안에 작은 시내하나 흐르도록 마련해 두는 일처럼
사소한 일상일 수도 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내 마음밭에 여유가 늘어가는 일이다.
그것들을 그냥 내 안에다 놓아두는 일인 것이다.
내 마음밭에 가뭄이 온다면,
아니 살다가 사람에 대한 갈망으로 몹시도 외롭거나 힘든 때가 있다면
그 때 그 물이 필요할때도 있을 것이다.
그때 그 시내는 내게 생명수가 될수도 있다.
강한 사람은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머릿속에 저장한다.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다.
수첩에 기록하는 것처럼 기억을 정보로 분류해서 머릿속에 적어둔다.
하지만 약한 사람의 기억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속에 저장돼 있다.
머릿속에 적는 게 아니라 가슴에 새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파오는 것이다.
누군가에 대한 기억,
머릿속에만 저장가능한 사람과
가슴속에만 저장 가능한 사람.
가슴이 한번도 아파본적 없는 사람은 머리로만 사랑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강한사람을 사랑하는 약한사람은 생각만 해도 아프다.
사랑의 깊이가 이렇게 분류되는 것일가.
사랑에도 받는 쪽과 주는 쪽이 정해져 있는 것일까.
약한 사람은 그래서 늘 약하기만 한 걸까.
가슴속에 저장가능한 사람은 늘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어떤 형일까.
강한것과 약한 것을 다 가진 사람이어야 이상적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하하 하하하, 사람의 웃음은 물 소리를 닮았다.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점에선 더욱 그렇다.
졸졸졸 시내처럼 흐르는 웃음이 있다면,
너는 분수처럼 시원하게 솟구치는 웃음이다.
모든 사람들이 너처럼만 웃으면 어떨까.
웃음은 또 웃음을 만들며 서로에게 끝없는 돌림노래 처럼 불리겠지...
조진국 < -뒷모습을 허락하는 것은 전부를 주는 것이다> 부분
내 것이 아니지만 나만 볼 수 있는 웃음!
맑고 환해서 눈부신 햇살같은..
미소가 봄볕같아서,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는
사춘기 소년의 미소같은 부끄러운 순수를 우리는 잊고 산지 오래다.
그러다, 살다가 그런 웃음 한번 만나면
그 웃음만으로도 이 세상 살아가는 일이 행복해지기도 하는..
이런 웃음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보이는 자신도 모르는 웃음일수도 있다.
볼수 있는 사람만 보는 것일테니까..
문득 울고 싶은 기분이 드는 건 외로움이지만,
울고 난 뒤에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아는 건 쓸쓸함이리라.
그래서 나느 더이상 울지 않는다. 너는 더 이상 내것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네 입술은 그저 네 입술이고, 네손은 그저 네 손일 뿐이다.
네 마음은 그저 네 마음일 뿐이다.
그래 세상에 사랑에 쿨한 사람은 없다. 쿨한 척 할 뿐이다.
뜨거웠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쿨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가장 쿨한 것이다. 그게 사랑이다.
마음이 아파도 괜찮다.
너의 마음이 어떻게 변했든,
난 너를 뜨겁게 사랑했고 그랬으니 뜨겁게 추억할 것이다.
그건 너하고 상관없는 나의 특권이다.
이상하게 울지 않았는데도
볼이 훑고 지난 자리처럼 마음속이 뚫리고 위로가 되었다.
까맣게 타버린 그 자리엔 화전처럼
슬픔을 거름으로 언젠가 파란 싹이 고개를 내밀 것만 같았다.
울어도 변하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쓸쓸함이다.
사랑할 때는 장점이었던 것이 헤어지고 난 뒤에는 단점으로 바뀐다.
세세한 걸 기억해 내는 영민한 내 기억력은 너와 관게된 모든 숫자를 지워야 할 때는
오히려 바보 같은 단점이 되어 있었다.
사랑할 때 생기는 잦은 우연은 행복한 운명으로 연결시킬 수 있지만,
헤어진 후에 맞딱드리는 우연은 깊은 슬픔으로 직행한다.
누가 내 몸에 손가락 하나만 눌러도 나는 피아노 건반처럼 슬픈 음을 낼 것만 같다.
조진국 <-어느날 추억은 담담해지고 마음은 단단해 질 것이다>부분
'추억이 담담해지면 마음은 단단해 진다'
손가락 하나만 눌러도
아니 말한마디만 걸어와도
울것 같은 상태를 나도 경험해 본적이 있다.
한번은 친구 앞에서 였는데
그녀가 내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건만
내가 먼저 터트린 울음이었다.
그리고 또 한번은
울음이 목구멍까지 차 올라 있었는데
옆에서 살짝 건드려준 남편 덕분이었다.
울음뒤에,
눈물로도 들어 낼 수 있는 짐 같은 것이 있다는 걸
나는 두번이나 경험했다.
가끔 울고 싶을일이 생기면 혼자서 울어 볼 일이다.
누가 있어 내 울음을 나눌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더 사랑하게 된다.
언제나 사랑만 받는 사람은 없다. 내가 네 뒤에 서 있듯이,
그사람은 나의 등을 바라보고 있는 거겠지.
우리들은 그렇게 누군가에게 받은 사랑을 다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데 쓰는 거겠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는 그 단순한 공식을 맞히지 못해서
우리는 그렇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 또 상처를 주며 살아갈 것이다.
사랑이 존재하는 한 돌고 돌며 역할이 바뀌는 그 경주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왜 거북이는 질 것이 뻔한 경주를 토끼와 하겠다고 나선 걸까.
그때는 짐작이 안 됐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거북이는 토끼를 사랑했던 것이다.
토끼의 경박한 천성과 자신을 비웃는 듯한 눈빛에도 거북이는 토끼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거북이는 언제 이 힘든 경주가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앞서 뛰어가는 토끼의 등을 보면서 계속 가야 한다고 마음먹은 것이었다.
너는 그때 네가 토끼이고, 초록고량이가 너의 거북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우리는 항상 누군가의 거북이가 된다.
언제나 토끼인 사람은 없다.
한때는 토끼였다가도 거북이로 바뀌기도 한다.
언젠가는 누군가의 토끼가 되어서 거북이를 슬프게 하겠지.
거북이로 살았던 슬픔을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리고
다른 거북이를 힘들게 하겠지.
잘 산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나의 거북이를 알아보는 일이 아닐까.
산이 아니라 바다에서 살아야할 거북이
사랑하기에 산을 택한 거북이를 잊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내 거북이에게 내가 해 주어야 할 일은
그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야 거북이가 행복할 테니까.
거북이는 산이 아니라 바다에서 살아야 행복할 수가 있다.
거북이는 이 길로 뱡향을 바꿔 바다로 갈 것이다.
거친 산길이 아니라 거북이가 토끼처럼 빨리 달릴 수 있는 푸른 바다에 닿을 것이다.
온전히 주고 온전히 받을 수 있는 사랑이 그곳에는 있을 것이다.
중간에 돌아와 다시 출발점에서 힘든 경주를 시작하겠다고 반복할지도 모른지만,
지금은 오랜지빛 햇살을 등에 받으며 신나게 바다를 헤엄치는 꿈을 꾸며 갈 것이다.
조진국 <-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더 사랑하게 된다> 부분
주인공 희정이
그 남자의 거북이인 자신을 확인하면서
마지막으로 홀로서기를 예감하게 해주는 독백글이다
토끼를 떠나는 것이 거북이에게 어찌 쉬운일일까
더군다나 자신이 거북이라는 걸 완벽하게 인식하고서도..
아프고 상처받더라도 또 사랑할 거라는 메세지와
지금은 이렇게 떠나지만이라는 메세지가 함께 들어있다.
책제목이 독특해서 사전계획없이 구입한 책이다.
제목보다 더 감성적인 문장이 젊은 세대들에게 맞는 연애소설같다.
그렇지만 그리 나쁘지 않았던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과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주인공 희정의 심지가 맘에 들었다.
사랑에서 가장 눈부신 순간은 언제일까.
서로를 향한 갈망으로 바쁘게 불꽃이 일렁일 때일까.
아니면 불꽃이 꺼진 다음 비로소 그리움으로 번지는 순간일까.
그리움이 담긴 눈으로 찬찬히 들여다 보니
내 주위에도 나를 닮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떠나간 사람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을 마음을 다해 살아가는 그들이 내 눈엔 거북이로 보였다.
세상엔 빠르고 가볍고 잘난 토끼와 느리고 무겁고 못난 거북이가 있다면,
나는 거북이로 사는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내 모습이 앞으로 어떻게 변한다 해도
내 천성은 거북이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말 -- 조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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