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아주 오래전,
황대권선생님의 <야생초편지>를 읽다가
제일 가슴에 와 닿았던 부분이 여뀌에 관한 묘사였다.
장마철에 장대비가 한 나절만 내려도
내 고향 도랑물은 갑자기 확 불어나곤 했다.
도랑을 휩쓸듯이 무섭게 기세좋게 떠내려 가던 그 황톳물까지..
여뀌부분을 읽다가 시공을 초월하듯
내 유년의 기억속 고향 빨래터 도랑가로 가 있는 나를 보았다.
내 고향에서는 여뀌를 <돼지풀>이라고 했던것 같다.
돼지가 좋아해서 그렇게 붙여진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어릴때 했지만
우리집 돼지에게 뜯어다 먹여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그런날..
황톳물이 도랑을 덮칠듯한 날에는
어른들도 아이들도 도랑가에 나와서 황톳물을 구경 했었다.
물만 구경해야지
발이라도 씻겠다고 도랑가에서 어슬렁 거리다가
고무신이 빠른 물살에 휩쓸리기라도 하면 낭패였다.
여축없이 눈에 보면서도 물살보다 더 빠르게 떠내려 가던 고무신,
도랑길둑을 따라 달려가 보아도 결국은 놓치고 마는,,
매번 놓치고 와선, 고무신 잃어버렸다고
엄마에게 야단 맞았던 기억,
그리고,
황톳물이 잦아들고 나면
도랑가에 비질한듯히 결도 곱게 누워있던 여뀌!
내 유년의 여뀌는 황선생님 말마따나
평소에는 귀찮은 풀처럼 보였던 내겐 하찮은 풀로만 여겼던 그런 풀이었는데
황선생님의 야생초편지를 읽으면서 그리운 풀이 되었던 것이 여뀌다.
황톳물은 고무신과 여뀌와 함께 그렇게 내 유년의 사진처럼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오늘은 여뀌를 그렸다.
동네를 따라 역귀, 역꾸라고 불리기도 한다.
밖에 나가면 개울가나 도랑에 지천으로 나 있는 게 여뀌인데
이상하게도 이 교도소 안에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아마 씨가 무거워서 잘 날아다니지 않는가 보다.
오늘 운동장 후미진 곳에 난 강아지풀 사이에서 이놈을 발견하고 얼마나 반갑던지.
한 줄기 쑥 뽑아 와서 이렇게 너에게까지 인사를 하는 거다.
그려 놓고 보니 지금까지 그린 풀 중에 가장 맘에 들게 그려진 것 같다.
사실 여뀌는 이렇게 하나씩 떼어 놓고 보면 참 예쁜데 워낙에 무더기로 나니까
그저 귀찮은 풀처럼 보이는 거야.
이놈은 물을 좋아해서 항상 물가에 많이 난다.
어릴 적에 장마들어 족대 들고 고기 잡으려 가면
으레 물에 잠긴 여뀌풀 속을 뒤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장마가 끝나 물이 빠지고 나면
여뀌 줄기에 걸린 비닐이나 헝겊쪼가리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아마 지금쯤 장안천 변에도 여뀌가 흐드러지게 피었을 것이다.
한다발 꺽어다 꽃병에다 꽂아 놓고 보아도 운치가 있을 것이다.
여뀌는 지혈, 타박상 , 월경과다에 잘 들으며, 잎에 매운 맛이 있어
생선회를 먹을 때 곁들여 먹는다고 한다.
<황대권- 야생초편지 여뀌부분>
낮이 길어진 요즘은 해거름에 운동나서기가 좋다.
해는 서산에 지고,
저녁느낌이 듬뿍 나지만 아직 어둡진 않은,
비오는 저녁에 우산을 들고 동네 저수지로 운동을 다녀왔다.
우산들고 운동 나선길은 처음이었다.
운동가자는 남편의 제안이 좀 청승맞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나서고 보니 우산에 부딪는 빗소기가
경쾌하고 음악처럼 들리는 그런 산책길이었다.
비오고 난뒤나 비오는 때는
말갛게 세수한 듯한 아스팔트 길이 산책로로 더 좋다.
평소엔 저수지 둑길 흙길까지 갔었지만,
비덕분에 둑길 아래 하천길을 도랑길 걷듯이 쭈욱 걸어가 보았다.
핑크빛의 요 그리웠던 여뀌가 모내기 끝난 논가에, 길건너 도랑가에
얼마나 선명하고 이쁜지 색때문에 금방 눈에 들어왔다.
비 덕분에 보게된 셈이다.
카메라를 들고 갔어야 했는데..
아쉬워서, 할 수 없이
요 이쁜 여뀌 세 줄기를 꺽어 왔다.
'책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0) | 2009.07.11 |
---|---|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 조진국 (0) | 2009.07.09 |
어느 암자의 작은 연못 - 법정 (0) | 2009.07.01 |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 - 김용규 (0) | 2009.06.26 |
詩語辭典(시어사전)-김재홍 (0) | 2009.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