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9일 향년 57세의 나이로 이세상을 떠난 장영희 선생님!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지난 2000년에 <내 생애 단 한번>출간 이후
월간 <샘터>에 연재되었던 것들이다.
병상에서 마지막 교정지까지 보시고 제목까지 정해주고선
정작 초판발행을 일주일 앞둔 (5월 15일) 돌아가셨다.
지난 화요일에 <문학의 숲을 거닐다>와 함께 구입했는데
벌써 17쇄 (6월 22일 발행)인걸 보면
선생의 독자가 엄청 많은 셈이다.
개인적으로 샘터에서만 가끔 만난셈이고
선생돌아가시고 나서 <내 생애 단한번>을 접했고 이 책은 두번째 책이다.
내생애처럼 편안하게 잘 읽혀지는 책이었지만
살아계시지 않아서 그런지 이런마음이셨구나,
삶을 이렇게 사랑하고,
살아있음을 축복으로 느끼며 사셨는데 라는 생각때문에
그런지 더욱 가슴에 와 닿는 글들이 많았다.
오늘 아침 무심히 차에서 내리다가 문득 가을을 만났다.
언제 어디서 떨어졌는지 퇴색한 플라타너스 잎 하나가 동그마니 내 차 지붕위에 얹혀 있었다.
어느새 비껴 내리는 햇살은 한껏 부드러워졌고, 스치듯 지나가는 바람 냄새는 풋풋했으며,
흰 구름 몽실몽실 피어 있는 하늘은 예사롭지 않게 푸르렀다.
새삼 정신을 차리고 유심히 둘러보니 이제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마다 조금씩 소멸을 준비하는 모습이 완연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내 마음이
이제는 차돌같이 굳어 아무런 틈새가 없는 줄 알았는데 웬걸,
문득 휑한 바람 한 줄기가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아, 가을이구나
나무와 풀은 이 세상에서의 삶과 사랑이 치열했던 만큼 미련도 남고 아쉬움도 많으련만
이제 생명과의 이별을 저마다 다소곳하게 순명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온갖 시련에도 다시 추스르고 일어나 열매를 맺고,
마침내 스스로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생각해보면 나도 내 인생의 가을 문턱에 서 있다.
삶에 대한 애착이야 남겠지만 그래도 있는 날까지 있다가
내 시간이 오면 나무처럼 풀처럼 미련을 버리고 아름답게 떠나고 싶은 마음이다.
어제 tv에서는 우리나라의 빈부 차이를 보여 주는 특별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병이 들어 직업도 못 얻고 혼자 속절없이 죽어 가고 있는데도
단돈 100만 원이 없어 살던 집에서 쫒겨나야 하는 빈민촌 사람.
그런가하면 골프 연습장까지 갖추고 있다는 강남의 어느 주상복합 아파트는
한채에 20억을 호가해도 매물이 없어서 못 판다고 한다.
명품 핸드백에 중독에 가까운 증세를 보이는 어느 젊은 여자와의 인터뷰도 있었다.
방에는 온갖 명품 핸드백이 색깔별, 모양별로 가득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일본에서 발행하는 명품에 관한 잡지를 구독해 가면서
새로 나온 디자인을 구입한다고 했다.
최하 50만 원짜리부터 500만원까지 하는 핸드백도 있었다.
왜 굳이 명품을 들고 다니느냐는 질문에 그 여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걸 들고 다니면 사람들의 눈길이 느껴져요. 저를 쳐다보는......,"
그 여자의 말에 나는 적이 놀랐다.
단지 다른 사람의 눈길을 느끼기 위해서 그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다니,
나는 목발을 짚고 다니는 덕에 누구나 다 쳐다보는지라 남의 시선이 별로 달갑지 않은데,
그여자는 그 시선 때문에 그 많은 노력도 불사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그 여자를 쳐다보는 것은 부러워서이고 나를 쳐다보는 것은 불쌍해서라고 하겠지만,
내가 살아 보니까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남을 쳐다볼 때는 부러워서든 불쌍해서든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 차원을 넘지 않는다.
어렸을 때 우리 집 우산 하나가 살이 빠져 너덜거렸는데
그 우산이 다른 우산에 비해 컸기 때문에 어머니가 나를 업고 학교에 갈 때는 꼭 그걸 쓰셨다.
업혀 다니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데 게다가 너덜거리는 우산까지......,
그래서 비 오는 날은 학교 가기가 끔찍하게 싫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그때 내가 찢어진 우산을 쓰고 다녔다는 것을 기억하는 이는
아마 지금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찢어진 우산이든 멀쩡한 우산이든
비 오는 날에도 빼먹지 않고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그 여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살아 보니까 정말이지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라는 것이다.
명품 핸드백에도 시시한 잡동사니가 가득 들었을 수 있고
비닐봉지에도 금덩어리가 담겨 있을 수 있다.
물론 이런 말을 해봤자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이상한 궤변 말라고 욕이나 먹겟지만,
내가 살아 보니까 그렇다는 말이다.
내가 살아 보니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깍아 내리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 중요하지 않는 것을 위해 진짜 중요한 것을 희생하고,
내 인생을 작게 조각내어 조금씩 도랑에 집어넣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어렸을 때 주위 어른들의 겉모습,
그러니까 어떻게 생기고 어떤 옷을 입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고 할 때 코웃음을 쳤다. 자기들이 돈 없고 못생기고 능력이 없으니 그것을 합리화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가 살아 보니까 정말 그렇다.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다.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다.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은 tv에서 보거나 거리에서 구경하면 되고 내 실속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재미있게 공부해서 실력 쌓고,
진지하게 놀아서 경험 쌓고,
진정으로 남을 대해 덕을 쌓는 것이 결국 내 실속이다.
내가 살아 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다.
내가 남의 말만 듣고 월급 모아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한 것은 몽땅 다 망했지만,
무심히 또는 의도적으로 한 작은 선행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고마움으로 남아 있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남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다.
어차피 세월은 흐르고 지구에 중력이 존재하는 한 몸은 쭈글쭈글 늙어가고 살은 늘어지게 마련이다. 내가 죽고 난 후 장영희가 지상에 왔다 간 흔적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어차피 지구상의 65억 인구 중에 내가 태어났다 가는 것은 아주 보잘것없는 작은 덤일 뿐이다.
그러나 이왕 덤인 김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덤이 아니라,
없더도 좋으나 있으니 더 좋은 덤이 되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입 아프게 말해도 이 모든 것은 절대로 말이나 글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진짜 몸으로 살아 내야 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먼 훗날, 내가 이 땅에서 사라진 어느 가을날,
내 제자나 이 책의 독자 중 한 명이 나보다 조금 빨리 가슴에 휑한 바람 한 줄기를 느끼면서
"내가 살아 보니까 그때 장영희 말이 맞더라"
라고 말하면, 그거야말로 내가 덤으로 이 땅에 다녀간 작은 보람이 아닐까.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내가 살아 보니까- 부분>
<내가 살아 보니까> 이 부분을 읽다가
내게도 가슴에 휑한 바람 한줄기가 들어왔다.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살아보니까.. 끝까지 읽지도 못하고
오늘 아침 그렇게 나는 혼자 울었다.
지인의 장례식에서 쏟아내는 눈물같은 울음이었다.
아니 훨씬 더 아픈 울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선생의 말씀처럼 제자나 독자들이 많으니
선생은 이땅에 다녀간 보람을 충분히 하늘에서 느끼시리라.
"나도 살아 보니 장선생 말이 정말 맞습니다."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그래서 반갑고 반가워서, 울음이 솟구쳤는지 모르겠다.
부디 평안하시길..
초록색 풀밭 위의 빨간 말.
무얼 보았는지 반가운 마음에 그쪽을 향해 뛰어가려고 엉덩이를 쭉 빼고 앞다리에 힘을 불끈 준다.
갈기를 휘날리며 코를 벌름벌름 표정은 무언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금방이라도 우하하 폭소를 터트릴 것만 같다.
아무리 멀리 높이 뛰어도 걸릴 것 하나 없는 완벽한 자유를 향해 뛰어간다.
이에 장단 맞추듯, 초원의 풀들도 위로 쭉쭉 뻗어 새파란 하늘까지 닿았다.
그래서 하늘 몇 조각이 후두둑 풀밭에 떨어졌다.
김점선 씨가 이 초록빛 풀밭의 행복한 말을 장영희의 말로 지정한 이유는 뭘까?
황우석의 줄기세포 꿈은 멀리 가 버렸지만
금방이라도 뒷다리를 뚝 펴고 벌떡 일어날 듯한 저 빨간 말의 힘을 소망했을까.
아니면 네평짜리 비좁고 복잡한 연구실에 갇혀 이런저런 집착의 끈을 놓지 못하고 사는 내게
저 넓은 초원의 자유를 선사하고 싶었을까.
아니, 그보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바로 저 표정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듯한 표정 때문에
이 예쁜 빨간 말이 내 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김전선 씨 옆에 있으면 늘 그렇게 웃기 때문이다. 사는 게 재미 있어 못 견디겠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평화와 행복을 주체할 수 없어서 끝없이 웃는다.
그녀의 순발력과 기발함.
그녀의 활기가 지리멸렬한 삶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기 때문이다.
김점선 씨는 이제껏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겉모습은 터프하지만 속은 말랑말항하고 여리다.
겉은 씩씩하고 대범하지만 속은 섬세하고 여리다.
겉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은 한없이 순하고 착하다.
겉으로는 짐짓 무관심, 모르는 척하지만
그녀의 머리는 비상하여 이 세상의 모든 지식에 해박하다.
무엇보다, 겉으로는 엄숙해 보이지만 그녀는 끝없이 유쾌, 통쾌, 명쾌하다.
김. 점. 선. 한마디로 그녀는 그녀가 그려 내는 그림처럼
내 눈앞에 실체로 존재하는 아름다운 환상이다.
이름만 들어도 저 빨간 말처럼 반가운 마음으로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향해 달려가고 싶은.
이 글은 김점선 씨를 아는 지인들이 그녀가 각기 지정해준
말그림을 보고 단상을 쓸 때 적었던 것이다.
이 짧은 글을 내 마음에 영원히남아 있는 고 김점선씨에게 바친다.
"내 눈 앞에 실체로 존재하는 아름다운 환상" 이라고
표현했던 김점선 선생님은 삼월에 돌아가셨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향해 달려가고 싶은.'끝맺음처럼
선생도 점선선생 떠나고 두달도 못 채우고 그녀를 따라가신겐지 떠났다.
두분은 만났을까.
만났다면 이승에서보다 더 반가웠으리라.
김점선 선생님이 푸하하하하 웃으면서 그러셨을 것 같다.
"영희야 내가 목빼고 기다리는 거 알고 왔지.. ㅎㅎㅎ."
"당근이지 ㅎㅎㅎ"
두분은 가셨지만 책을 남겨두었으니
우리 독자들은 복이다.
좋은 것은 많이 나누어야 한다.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기만 하는 것들,,
사랑이나 기쁨, 희망, 소망 , 그리고 따뜻한 마음까지
정녕 우리들이 나누어야 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 아닐까.
그래야 잘 산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이분들처럼 아름다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닮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행운이다.
그래서 닮아갈 수 있다면 축복이며 행복이다.
책에서든 일상에서든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가며 살아야 하리라.
'책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학의 숲을 거닐다- 장영희 (0) | 2009.07.18 |
---|---|
우동 한 그릇 - 쿠리 료헤이 (0) | 2009.07.15 |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 조진국 (0) | 2009.07.09 |
여뀌- 야생초 편지 - 황대권 (0) | 2009.07.03 |
어느 암자의 작은 연못 - 법정 (0) | 2009.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