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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못지않은 조연? 얼떨떨해요”

구름뜰 2009. 8. 3. 09:13

대중문화

[2009 샛별] 신작 ‘해운대’ ‘10억’에서 물 오른 연기 배우 이민기 [중앙일보]

해상구조대원으로 출연하는 ‘해운대’를 준비하면서 3주간 해상구조훈련을 받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는 ‘10억’을 찍기 위해 열흘간 굶었다는 이민기. “연기파는 아니지만, 역할에 좀더 가깝게 가닿으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다부진 각오가 그를 주목 받는 조연으로 만들었다. [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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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민기(24)는 올여름 개봉작 ‘해운대’와 ‘10억’ 두 편의 영화를 찍으면서 재미난 별명을 얻었다. ‘모델 출신 연기파 배우’다. ‘모델 출신’이라는 말은 연기가 본업이 아니니 연기력이 처질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는 뜻일 터이고, ‘연기파 배우’는 그런 비딱한 시선을 깨끗하게 배신했다는 얘기다. ‘해운대’에서는 설경구, ‘10억’에선 박해일·박희순 등 쟁쟁한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니 칭찬에 더욱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모델출신 연기파 배우’ 별명 얻었죠”=“이유 없이 공부는 하기 싫고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걸 해보고 싶어서” 모델과(대경대)에 진학했고, “우연히 인터넷 카페 회원란에 사진 한 장 올렸다가” 강동원·여욱환 등이 소속된 ‘더멘모델’의 눈에 띄어 모델과 연기 활동을 시작한 지 5년째. 이민기는 이제 한 단계 도약을 위해 구름대를 힘차게 차고 올라간 듯하다.

그간 드라마 ‘달자의 봄’ ‘진짜진짜 좋아해’ 등과 영화 ‘로맨틱 아일랜드’ ‘오이시맨’ 등 적잖은 작품에 출연했지만, ‘주연 못지 않은 조연’ ‘주연을 위협하는 조연’이라는 칭찬을 들은 건 올해 이 두 영화에 힘입어서다. 배역 운도 따랐다. ‘해운대’의 해상구조대원 형식은 서울에서 놀러온 삼수생 희미(강예원)와 사랑에 빠져 끝내 ‘희생’이라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하는 순수남이다. ‘10억’의 철희는 좀더 거칠고 직설적이다. 해병대 출신으로 고층빌딩 유리를 닦으며 생계를 잇던 그는 상금 10억원이 걸린 죽음의 서바이벌 게임쇼에 참가하기 위해 호주 모래사막으로 떠난다.

“칭찬은 감사하고 기분 좋은데, 솔직히 시험 볼 때 답을 때려맞춘 기분이에요. 전 자신감에 넘쳐 ‘그래, 해내자’ 이러는 게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에이, 일단 부딪쳐보자’하는 쪽이거든요. ‘해운대’나 ‘10억’도 저만 잘해서 제 존재가 빛났겠어요? 시나리오·연출·배우 등 여러 요소들이 잘 어우러졌으니 좋은 결과가 나온 거겠죠.”

◆연기파이기 전에 노력파=그가 ‘연기파’는 아닐지 몰라도 분명한 건 하나 있다. 작품마다 “그 인물에 가 닿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촬영기간 중 역할과 비슷하게 생활을 하려고 애쓰는 건 그래서다. ‘해운대’를 준비할 때는 서울 중앙소방서에서 3주간 구조훈련을, 부산에서 해상훈련을 받았다. ‘10억’에서는 굶고 쫓겨다니는 절박한 느낌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호주 촬영을 가 꼬박 열흘간 굶기도 했다. “영화에 직접 드러나지는 않는 거니까 훈련이나 굶는 걸 굳이 할 필요까진 없었어요. 그런데 하고 싶었어요. 그래야 그 인물에 가장 근접한 내가 되지 않을까 싶었죠.”

대선배들과의 작업은 “배우는 타고나는 줄로만 알았던” 생각을 바꾸게 된 값진 경험이었다. “경구형, 희순이형, 해일이형 보니까 배우는 노력하는 사람이더라고요. 경구형은 경상도 사투리만 해도 ‘적당히’가 없어요. 방에서 하루종일 나오지도 않고 사투리만 연습해요. 희순이형도 첨엔 방에서 뒹굴뒹굴 하는 줄 알았더니 대본을 보고 또 보고 수도 없이 읽으면서 연습만 하더라고요. 저는 역할에 저를 비슷하게 맞추려고 낑낑대고 있는데, 그 형들은 이미 그건 다 끝내고 영화 전체를 생각하더라고요.” 선배들을 보며 깨달은 게 하나 더 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연기를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술 마시면서 생각했죠. ‘음, 나도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요.(웃음)”

기선민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