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그리운)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치니의 님은 이탈리아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기루어서(안쓰러워서)이 시를 쓴다.
-군말
님만 님이 아니라 그리운 것은 다 님이다.
승려이면서도 너무나 인간적인 시를 쓴 시인
스님에게 '님'은 무엇이었을까. 그리운 것은 다 '님'이라고 했으니,
어느 때는 조국이기도 했을 것이고, 석가모니 또는 사랑하는 사람,
또는 사랑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사랑해야 할 것들까지 다 님이 아니었을까.
스님의 님은 읽는즉시 곧바로 읽는 이의 님으로 전환된다.
그래서 군말이 필요없다고 '군말'이라는 시제를 붙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ㅎㅎ
그건 스님의 '님'이 가진 포용력이기도 하다.
그리운 대상,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싶은 대상,,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다'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일이 모두 나와 동떨어지지 않은 님의 일인지라
님을 너의 그림자라고도 표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구도자의 길을 가는 이의 이런 감성표현, 신앙의 대상에 국한시키지 않아
더 여유있고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혼자생각ㅎㅎ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알수없어요
님의 침묵은 만해의 대표작이다.
자연의 신비로운 아름다움, 절대자에 대한 동경,
'알 수 없어요'란 제목은 알 수 없는 신비 속에 있는 절대자의 본체를 추구하고
끊임없이 구도하는 자신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어떻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될까? 윤회일까? 질량불변의 법칙인가?
일제와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려는 만해의 의지의 불변성인가?
타고 남은 재가 어떻게 기름이 될까라고 자꾸 따져 묻지 말자.
만해의 역설을 이 해할 수 없다면, 시집 <님의 침묵>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
아아 사람은 약한 것이다. 여린 것이다 간사한 것이다
이 세상에는 진정한 사랑의 이별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죽음으로 사랑을 바꾸는 님과 님에게야 무슨 이별이 있으랴.
이별의 눈물은 물거품의 꽃이요 도금한 금방울이다.
칼로 벤 이별의 '키스'가 어디 있느냐.
생명의 꽃으로 빚은 이별의 두견주가 어디 있느냐.
피의 홍보석으로 만든 이별의 기념반지가 어디 있느냐.
이별의 눈물은 저주의 마니주요 거짓의 수정이다.
사랑의 이별은 이별의 반면에 반드시 이별하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있는 것이다.
혹은 직접의 사랑은 아닐지라도 간접의 사랑이라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별하는 애인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것이다.
만일 애인을 자기의 생명보다 더 사랑한다면 무궁을 회전하는 시간의 수레바퀴에
이끼가 끼도록 사랑의 이별은 없는 것이다.
아니다 아니다 '참'보다도 참인 님의 사랑엔 죽음보다도 이별이 훨씬 위대하다.
죽음이 한 방울의 찬 이슬이라면 이별은 일천 줄기의 꽃비다.
죽음이 밝은 별이라면 이별은 거룩한 태양이다.
생명보다 사랑하는 애인을 사랑하기 위하여는 죽을 수가 없는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위하여는 괴롭게 사는 것이 죽음보다도 더 큰 희생이다.
이별은 사랑을 위하여 죽지 못하는 가장 큰 고통이요 보은이다.
애인은 이별보다 애인의 죽음을 더 슬퍼하는 까닭이다.
사랑은 붉은 촛물이나 푸른 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먼 마음을 서로 비치는 무형에도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애인을 죽음에서 잊지 못하고 이별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애인을 죽음에서 웃지 못하고 이별에서 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인을 위하여는 이별의 원한을 죽음의 유쾌로 갚지 못하고 슬픔의 고통으로 참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차마 죽지 못하고 차마 이별하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곳이 없다.
진정한 사랑은 애인의 포옹만 사랑할 뿐 아니라 애인의 이별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때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간단이 없어서 이별은 애인의 육뿐이요 사랑은 무궁하다.
아아 진정한 애인을 사랑함에는 죽음은 칼을 주는 것이요 이별은 꽃을 주는 것이다.
아아 이별의 눈물은 진이요 선이요 미다.
아아 이별의 눈물은 석가요 모세요 잔다르크다.
-이별
*사랑하니까 이별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가?
사랑하니까 이별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러나 이 세상에는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헤어지는 연인들이 있다.
당신의 얼굴은 달도 아니언만
산 넘고 물 넘어 나의 마음을 비춥니다.
나의 손길은 왜 그리 짧아서
눈앞에 보이는 당신의 가슴을 못 만지나요.
당신이 오기로 못 올 것이 무엇이며
내가 가기로 못 갈 것이 없지마는
산에는 사다리가 없고
물에는 배가 없어요.
뉘라서 사다리를 떼고 배를 깨뜨렸습니까.
나는 보석으로 사다리를 놓고 진주로 배 모아요.
오시려도 길이 막혀서 못 오시는 당신이 기루어요.
-길이 막혀
*임은 나를 달빛처럼 비추는데 나는 임에게 닿을 수가 없다.
그래서 당신을 만지지 못한다.
당신에게 가고 싶지만 산으로 가자니 사다리가 없고,
물로 가자니 배가 없다.
누군가 사다리와 배를 다 깨뜨려버렸다.
여전히 나는 당신이 그립다.
님이여 나의 마음을 가져가려거든 마음을 가진 나한지(나와함께)가져가셔요.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님에게서 하나가 되게 하셔요.
그렇지 아니하거든 나에게 고통만을 주지 마시고 님의 마음을 다 주셔요.
그리고 마음을 가진 님한지(님과 함께)나에게 주셔요.
그래서 님으로 하여금 나에게서 하나게 되게 하셔요.
그렇지 아니하거든 나의 마음을 돌려보내주셔요.그리고 나에게 고통을 주셔요.
그러면 나는 나의 마음르 가지고 님이 주시는 고통을 사랑하겠습니다.
-하나가 되어 주세요
* 내 마음을 가져가려거든 나까지 함께 가져가라.
임과 하나게 되게.
그렇지 않으면 임의 마음을 나에게 달라
마음을 가진 임과 함께. 임과 하나가 되게.
즐겁고 아름다운 일은 양이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사랑은 양이 적을수록 좋은가 봐요.
당신의 사랑은 당신과 나와 두 사람의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양을 알려면 당신과 나의 거리를 측량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나의 거리가 멀면 사랑의 양이 많고 거리가 가까우면 사랑의 양이 적을 것입니다.
그런데 적은 사랑은 나를 웃기더니 많은 사랑은 나를 울립니다.
뉘라서 사람이 멀어지면 사랑도 멀어진다고 하여요.
당신이 가신 뒤로 사라잉 멀어졌으면 날마다 날마다 나를 울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어요.
-사랑의 측량
*당신과 나의 사랑은 물론 당신과 나와의 사이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과 나와의 거리가 멀면 사랑의 양이 많을 것이고,
당신과 나와의 거리가 가까우면 사랑의 양이 적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나? 당신과 가까워지면 사랑의 양은 적어지자만 즐거움은 커지고,
당신과 멀어지면 사랑의 양은 많아지자만 괴로움이 커지는 것을.
아, 이 지독한 역설, 사랑은 즐겁고 아름다운 일이 아니다.
사랑은 울음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행복을 사랑합니다.
나는 이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으 행복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정말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느 그 사람을 미워하겠습니다.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을 미워하는 고통도 나에게는 행복입니다.
만일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미워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얼마나 미워하겠습니까?
만일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은다면 그것은
나의 일생에 견딜 수 없는 불행입니다.
만일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자 하여 나를 미워하면 나의 행복은 더 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원한의 두만강이 깊을수록
나의 당신을 사랑하는 행복의 백두산이 높아지는 까닭입니다.
-행복
사람들은 말한다.
누구를 미워하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의 전도된 표현이라고.
사람들이 가장 못 견뎌 하는 것은 사랑도 미움도 아닌 무관심이라고 한다.
비밀입니까. 비밀이라니요 나에게 무슨 비밀이 있겠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대하여 비밀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마는 비밀은 야속히도 지켜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나의 비밀은 눈물을 거쳐서 당신의 시각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의 비밀은 한숨을 거쳐서 당신의 청각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의 비밀은 떨리는 가슴을 거쳐서 당신의 촉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박의 비밀은 한 조각 붉은 마음이 되어서 당신의 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비밀은 하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밀은 소리 없는 메아리와 같아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비밀
*네가 나이고 내가 너인데 그런 둘 사이에 무슨 비밀이 있겠냐는 거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당신이 알고 잇고,
당신이 알고 있는 모근 것 또한 내가 다 알고 있다.
우린 둘만은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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