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섣달 그믐(작은 설날)

구름뜰 2010. 2. 13. 20:26

 

 

어릴적 큰집에 설쇤다고 모인 이시간 쯤이면,

저녁먹고 하릴없는 우리들은 작은방에서 뒹굴고 놀았다.

놀다가 잠이 스르르 올때쯤이면, 사촌이 어김없이 내게 놓는 엄포가 있었다.  

"오늘 자면 내일 아침에 눈썹이 하얗게 샌대"

초등학교 적엔 정말 그렇게 될 줄 알고  눈거풀이 천근만근 무겁게 엄습해와도 

 12시를 넘기고서야 잠들었던 기억도 있다.

 

중학생 때는 이 시간 쯤이면 친구들이 놀러가자고 데리러 왔고,

밤늦도록  노느라 눈거풀 같은건 안중에도 없었다. 

동기들이 워낙 많기도 했고, 개구지고 입담좋은 덕분이기도 했다. 

일년에 한 두번 내지 두 세번이었지만, 기억속에 남아있는 고향친구들과의 시간은 

아름다운 동화처럼 추억속 페이지에 남아있다. . ..  

 

따뜻한 아랫목에 사내아이들과 계집아이들이 모여앉아 놀았는데,

재밌는 얘기란 것이 그곳에 살지 않아서 나는 잘 몰랐던 동네사람들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주재료로 올랐는데 그 이야기들을 얼마나 구성지게 얘기해 주는지. 

누가 얘기하든 리액션이 뛰어나고 호흡이 잘 맞았던 고향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밤을 꼴딱 새고 싶을 만큼 재밌는 시간이었다. 

이성에 눈이 트이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멋진 친구들이 많았던 덕분이기도 했다. 

 

어떤 밤은 놀다 나오면  눈이 내리는 밤도 있었는데,

가로등 불빛아래로 내리는 눈 풍경까지도 낯설고 아름다웠다. 고향에선,,,

까만밤에 하얀 밤 손님을 맞으며 걷는 기분은 딴 세상같은 느낌을 주었고,, 

아름다운 시절로 유년의 추억은 고향과 함께 친구들까지 잊을수 없는 것으로 남아있다.   

 

섣달 그믐이다. 식구들은 목욕가고  이맘때면 본능처럼 고향생각이 난다.

 목욕하니 또 생각나는 게 있다. ㅎㅎ 가마솥에 물데워 식구대로 했던 풍습도 있었다. ㅎㅎ

"누구네는 추석에 한번 설에 한번 일년에 목욕을 두번한다"는 우스개 소리를 할만큼,

목욕은 묵은때를 벗기고 새해를 맞는 연례행사 같은 것이기도 햇다.

 

명절이 이렇게 분주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많구나 하는 것은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지만, 

그래도 이맘때면  언제나 설렌다. 

그때처럼 부모님이 고향에 계셔 오늘같은 밤이면 고향에서 보내는 친구들도 있을것이다.  

명절은, 살아가는 날들 중 최고의 축제인것 같다. 그전에도 그랬고 이후에도 그렇지 않을까.

 

 

 

지나간 것은 아무리 누추하고 옹색했더라도 아름답게 남는 건지.

기억속에 남아있는 것들이 추억을 확장시키듯  내 단상을 넓혀주는 것 같다. ㅎㅎ

이래서 추억이 없는 삶이 불행한 삶이라고 했던가..

 

그리운 친구들,, 어떻게들 변했을지. 많이들 달라졌겠지.

모두들 잘 살아가고  있겠지..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난다는데.. .

날이 날이라 고향생각이 간절한 섣달그믐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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