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샤갈은 고향을 떠나 대부분의 삶을 프랑스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래선지 그의 그림에는 항상 고향 러시아의 비테브스크(Vitsyebsk)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그에게 고향은 어린시절을 보낸곳이며 죽음이 갈라 놓을 때까지 사랑한 여인 벨라와의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고향은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고
따스한 감성의 소유자 벨라는 언제나 샤갈의 옆에서 다정한 아내의 역할을 다했는데,
아쉽게도 샤갈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났다.
벨라를 떠나보낸 샤갈은 '평생토록 그녀는 나의 그림이었습니다'라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고,,
"내 사랑하는 마을 비테브스크.
너를 마지막 보고, 울타리쳐진 너의 거리에서 나를 발견한 후 오랜 세월이 흘렀구나.
너를 사랑하면서 왜 여러 해동안 너를 떠나 있었는지...?
그럼에도 너는 내게 묻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만 말해주었지.
'그는 우리들의 지붕 위에 눈이나 별로 샤워시켜 줄 찬란한 색깔을 찾아 그 어딘가로 갔을 거'라고.....
나는 이제 너와 살지 않지만 너의 즐거움과 슬픔이 반영되지 않은 내 그림은 단 하나도 없어.
지난 모든 세월 동안 나는 한 가지 그치지 않는 걱정이 있었어.
내 고향이 나를 이해할까? ........"
샤갈이 프랑스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뉴욕의 한 신문에 게재한 '내 고향 비테브스크'의 일부..
고향! 그리움의 대상인 곳,
샤갈처럼 어린시절의 추억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까지 있는 곳이라면
샤갈과 벨라에게 고향은 이상향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1969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김춘수 시선집》에 수록되어 있다.
봄의 순수한 생명의식을 이미지로 포착하는 데 성공한 이미지즘 계열의 시에 속한다.
산문적 의미 전달보다 시인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심상들을 감각적인 언어로 포착해
순수한 이미지만을 추구한 무의미의 시(절대시)를 실험한 작품이다.
표현주의 화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의 《눈내리는 마을》이 연상되는 이 시는
마르크 샤갈의 화풍인 초현실주의 경향의 작품세계와도 부합되는 면이 있다.
'시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심도- 공석진 (0) | 2010.03.16 |
---|---|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 김영랑 (0) | 2010.03.12 |
비소리 - 주요한 (0) | 2010.03.04 |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김소월 (0) | 2010.03.03 |
한사람을 사랑하는 일 (0) | 2010.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