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홀로서기 사랑

구름뜰 2010. 3. 30. 09:48

 

 

 "엄마, 빨래는 어떻게 해?" "세제와 섬유린스는 어떻게 달라? 가루비누는? " "다림질은?"

 집 떠난 삼월 첫째 주, 시도 때도 없이 이런 전화를 불쑥불쑥 걸던 녀석이 3주만에 왔다. 셔츠 2장과 청바지 한장의 빨랫감만 들고 온걸 보면, 그 동안의 것은 혼자서 해결하고 온 셈이다. 떠나기 전에 몇번이고 가르쳐주려 했지만 닥치면 하게 된다고 나 몰라라 하더니,  셔츠 깃과 소매에 비누칠하고 빨래판에 주무르는 것까지. 손빨래 시범을 제법 눈썰미 있게 지켜보았다.  역시 필요하다고 느낄때 교육효과가 가장 좋다. 

 

  친구는 큰아이가 딸이고 작은 아이는 아들인데  외출에서 늦거나 하면 딸은 놔두고 아들에게 밥 하라는 전화를 한다. 딸은 어차피 할거지만 아들은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를 보면서 나는  그동안 뭐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습관은 잘  바뀌지 않는다.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대부분 부모몫이고 엄마 몫인 경우가 많다.

  

  집 떠날때 옷개는 방법과 가방 싸는 법,  특히 셔츠 개는 법(와이셔츠 포장법)을 꼼꼼히 알려 주었는데  빨랫감 내 놓는걸 보니 단추를 다 채워서 반듯하게 개어 가지고 왔다. ㅎㅎ웃음이 났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구겨진 빨랫감보다는 보기 좋았다.  고3 때까지 공부말고는 모든 것을 등한시 해온 내 과오를 아이들 모습에서 자주 보게 된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라 지금이라도 어찌 해 볼 요량으로 나는 아이들을 상대로 머리를 굴리고 있다. 만회하기 위해 용쓰는 중인 셈이다. .  

 

 지인 중에 외동 며느리가 있는데, 시어머니의 자식사랑이 극진해서 늘 감사한 마음만 있었다고 한다. 진정성 있게 잘 해 드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지내왔건만, 근래에 심경의 변화인지 우울증인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키웠는데 헛 산것 같다'는 말씀을 몇 차례나 울면서 하더라는 것이다. 아들에게는 내색을 않는 이런 어머니의 모습을 겪고 나니 어른을 부담으로만 느끼게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고 했다. 부모 자식간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닌것 같다.

 

  사랑은,,, 상대가 원하는것만 베풀어 주어야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반대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일도 중요하다. 본전 생각나는 사랑을 해서야 안되겠지만 적어도 나 때문에 자식이 힘들다거나 나 때문에 부모가 힘들지 않은 관계를 유지할려면 반드시 노력해야 하고 풀어내야 하는 과제물인 셈이다. 사랑하는 일, 특히 자식사랑하는 일이 너나 따질일은 아닌것도 같지만, 아이가 커 갈수록 부모가 늙어갈수록 그 사랑의 형태도 달라지는 것 같다. 나이듦으로 오는 심리적 불안을 잘 극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 인 것 같다. 주변에 친정부모든 시부모든 나이가 주는 변천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례들을 많이 보게 된다.  

 

 맞벌이로 가사를 분담해야 하는 세상인데  어느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여 나중에 며느리가 "어머님, 왜 이렇게 가사일은 모르는 아들로 키웠어요?" 하면.... 그런 생각이 들고부터 되로록 배려를 자제하고 지켜보는 노선을 택했다.  처음엔 '엄마 왜 자꾸 태클 걸어? 왜 그래? 하며 의아해 하더니 조금 더 지나자  무조건 들어주던 호시절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 때 부터 두 녀석 다  없던 유드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머리 쓸 필요가 없었던 엄마와의 관계에서 머리를 쓰야 한다는 것을 깨친 것 같다고나 할까.ㅎㅎ 큰아이는 애교가 늘었고 작은 아이는 까칠모드에서 나긋 모드로 전환되었다. 

 

 내가 달라져서 이뤄낸 성과!인 셈인데.. ㅎㅎ속으로 나는 요즘 잘 나가는 광고 카피처럼 '올레'하고 쾌재를 부르고 싶을 정도다. 조금씩 변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 작전!을 쭉 고수할 생각을 굳힌지도 몇 달 되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혼자서는 역부족일 때 말고는 뒤로 물러나 있을 요량이다. 홀로서기 사랑은 부모가 먼저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사람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례를 마치고..  (0) 2010.04.04
입관을 보면서..   (0) 2010.04.02
우리 살아가는 날들은..   (0) 2010.03.29
쇠말뚝 사건!  (0) 2010.03.25
나도 모르는 내 모습!  (0) 2010.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