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아버지, 시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그를 보지 말라.
그는 한때 가부장제의 시종이었지만
그가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고
한때 권력자처럼 굴었던 과오가 있었지만
그 또한 즐거워서만 권력을 휘두른 것은 아닙니다.
그는 꼼꼼히 따져보면,
사실은 한번도 배불리 먹어본 적 없었고
한번도 그 권력에 취해본 적도 없었고
또 한번도 그 각질의 얼굴 뒤에 억눌려 있는
자기 감흥에 따라
마음놓고 소리쳐 운 적도 없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빈곤하게 자랐으며,
먹고 살만하게 됐을 때는
이미 권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했고
그가 소리쳐 울어도 좋다고 할 때는 아무도,
심지어 가족들 조차도 그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불안한 틈을 살아 온 세대
많은 아버지들이 지금 혼자 있습니다..
--박범신 <남자들 쓸쓸하다>중에서
**가슴이 짜안 해지는 글 입니다.
낭독의 발견에서 오미희씨가 읽다가 눈물을 떨구어서
읽는데 한 호흡이 필요한 글 이었습니다.
찾아보니 2005년에 나온 박범신 선생님 책 속에 나오는 글 입니다
그들만의 사랑법으로 그들만의 방식으로 우직하게 살아오신
이시대의 아버지들
드러냄 없고 요란스럽지 않아서 더러 가족에게도 외면당해야 했던,
현실의 무게감으로 휘어졌을 이 시대의 남자들의 어깨를
조용히 쓰다듬어 주는 작가의 시선이 따뜻한 글이어서 올려 봅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남편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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