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찔 틈 없이 살 마를 틈도 없이
닭장 밑에서 지샌 듯 새벽같이 일어나
솔가지 꺽어 밥 짓고 마당 쓸고
조반 차리기 전 빨래하고 텃밭 메고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밖으로 나가
콩밭 깨밭 고추밭 미영밭 더터
골고지에 풀매기에 북주기에 물대기에
등짝이 죄 타도록 저 흘러 미쳐나다가
엉덩이에 불 붙도록 짧아진 그림자 밟으며
풀 한 짐 이고 돌아와 점심 차리고
갓난애 젖 주고 큰 애는 목욕시키고
오후엔 논으로 나가 농약 치고 피사리 하고
웃논 아랫논과 물쌈 하고 물꼬 막고
논두렁 풀 베고 한 벌 두 벌 거름 주고
산그늘 내리도록 저녁별 새하얗도록
이 손이 저 손인지 저 손이 이 손인지
아 그만 세월 모르게 헤매이다가
또 풀 한 짐 이고 돌아와 저녁밥 안치고
소밥 주고 쇠똥 치우고 돼지 닭 모이 주고
사랑방의 중풍 든 노인네 똥요강도 치우고
이윽고 오밤중 밥 먹고 샘가에 나 앉으면
에라 오상헐 놈은 중동 떠난 남정네
여자 속 밴댕이 속이라 해도 좋으니
그래도 그리운 것은 이역만리 서방님네.
- 고재종
고단한 농촌여성의 일상이다.
어릴적 어머니 모습같기도 하고,
큰 엄마 모습 같기도 한,
머리가 굵어지면서
어른들은 무슨 재미로 사실까
일하는 재미.. 그런 생각 했던 적도 있었는데..
고단한 보성댁의 일상을 마지막 행의
정서로 가볍게 詩화 했다.
진솔한 그리움.
사람, , 참 무엇으로 사나 싶다가도
문득 이런 시 한편 보면 역시 다.
그리움이고 사랑이다.
시 같은 순간이 있다.
어떠한 상상력의 윤색도 없이.
그저 드려내는 것만으로 시가 되는 참으로 시 같은 삶이 있다.
그 순간에 보고 듣고 겪는 모든 일은 행이 되고,
연이 되고, 마침내 꽉 짜인 시가 되어.
깊은 밤 달이 뜨듯 둥드릿하게 우리네 앞에 떠오른다.
하지만 시로 옯기는 것도 여간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삶의 흔적들 가운데 특정한 편린을 집어 올릴 수 있어야 한다.
고단한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길어 올리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적어도 열린 눈과 열린 마음, 그것은 천부적인 감수성이 아니라
일상적 삶 속에서 갈고 닦는 노력의 결실이다.
무조건 쉽게 감동하기를 버릇해야 한다.
쉽게 분노라고, 쉽게 감탄하고, 쉽게 눈물짓는 연습이 필요하다.
다만 쉽게 잊어서는 안 된다.
깊이 깊이 가슴 한 켠에 닻을 내려 묶어 두어야 한다.
그때 우리네 삶이 곧 시가 될 것이다.
-김상욱 - 시의 숲에서 세상을 읽다 중에서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 문제다.
가슴한켠에 닻을 내려 묶어두라고 하는데
잠시, 감동하면 그 뿐,
훨훨 개운한 마음으로 사니 원,
닻을 내리면 절로 묵직한 심연, 저 밑바닥이 짐작될려나.. . .
마음 좀 잘 추스리면 차분해 질려나
차분해지면 내려 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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