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나는 발자국을 짓밟으며 미래로 간다

구름뜰 2011. 7. 26. 08:50

 

 

 

가장 먼저 등 돌리네

가장 그리운 것들

기억을 향해 총을 겨눴지

꼼짝 마라, 잡것들아

살고 싶으면 차라리 죽어라

역겨워, 지겨워, 왜

영원하다는 것들은 다 그 모양이야

십장생 중에 아홉 마릴 잡아 죽였어

남은 한 마리가 뭔지 기억이 안 나

옛 애인이던가, 전처던가

그미들 옆에 쪼르르 난 내 발자국

이던가

가장 먼저 사라지네

가장 사랑하던 것들

추억을 뒤집으니 그냥 시커멓데

 

나는 갈수록 추해진다.

나쁜 냄새가 난다

발자국을 짓밟으며 미래로 간다

강변 살자, 부르튼 발들아

-심보선(1970~ )

 

그리움이란 누군가의 뒤에 서는 것이다 누군가의 등에 대고 "꼼짝마라" 외치는 것이다.

그가 아주 가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조준선 위에 그 사람을 올려두고 노려보는 것이다.

영원하다고 믿었던 것들은 다 사라졌다. 그대와 나 사이에 십장생이 뛰놀았다고?

다 잡아먹고 한 마리만 남았는데. 그마저 실종되고 말았다.

추억은 거울과 같아서 거울 뒤로 돌아가면 그냥 캄캄절벽이었지

"나는 갈수록 추해진다." 안 되겠다. 세수하고 이부터 닦자. 정신 차리로 미래로 가자.

내게도 "강변 살자"고 청원할 사람은 있겠지.

그런데 어, 발자국이 나 있네? 누군가 먼저 밟고 간 흔적이 있다.

나는 여전히 그의 등을 보아야 한다.

-권혁웅

 

"꼼짝마라" 고 외치는 것쯤이야 뭐 어려울까

조준선 위에  등만 보이는 그 사람을 노려보는것, 그런게 그리움이라면

 "잡것들아 꼼짝마라, 차라리 죽어라."

그렇게 털어 버리는 편이 낫겠다.

전부였던, 영원이었던, 그 잘난  십장생들은

다 잡아먹고,

추해지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미래로 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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