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의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몰아내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문학과 지성사
1942년 6월에 3일에 씌어진 시다.
윤동주는 해방 직전에 옥사했다.
식민시대 말기 자신의 삶의 공간을 시의 공간으로 끌어 안은 시인.
그 공간은 '육첩방(일본식 다다미방)의 남의 나라'와
'매운 계절의 채찍'으로 제시되고 있다.
윤동주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부끄러움의 미학을 유감없이 발휘한 시인이다.
독립운동을 하는 벗들과 그들에 비해서 일본에서 공부하는 자신,
조국을 빼앗긴 현실에서 고루한 학문의 세계에 머무르고만 있는
자신에 대한 엄청난 고뇌.
시대와 자신을 성찰한 그가 쓴 언어적 형상화는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살아낸 방식은 다를지라도 결론은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