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굼뜰이다.
모교인 웅양초등학교에선 매년 8월 15일이면 총동창회가 열린다.
총동창회는 모교뿐 아니라 거창 인근의 다른면에서도 해마다 열리는 면민 축제의 장이다.
듣고도 알면서도 멀지도 않은 곳인데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왜 못했는지
이 번에도 그런 생각은 못하고 있었는데
서울에 사는 친구가 "지천명이 되기 전에 얼굴 한번보자"는 연락을 해 왔다.
그 친구 덕분에 소식 몰랐던 동네 친구들이 연결고리처럼 달려 왔달까.
부산을 비롯 팔도로 흩어진 친구들이 모여드는 계기가 되었다.
동창회는 1박 2일 동안이었다..
15일 체육대회겸 운동장에서 기수별 캠프가 만들어진다길래
그 곳에서 동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실상은 14일날 저녁, 전야제행사가 열리며 훨씬 더 재밌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수하고는, ㅋㅋ
진로수정~! 14일 오후에 출발을 했다.
대 연회장처럼 기수별로 앉을 수 있도록 테이블이 준비되고 있었다.
오후 6시넘어서 부터 시작이라는 데 일찌감치 출발했다.
굼뜰은 집성촌이라 큰집, 작은 집, 등 친척집이 한 집 건너 두집 건너다.
큰어머니를 비롯 작은집 등 일가친척집 다섯 곳을 찾아 뵈어도 또 갈곳이 있는 곳이다.
오며 가며 마을 정자에 나와 앉은 상노인들에게도 인사드리고
또 마을 천장 높은 창고 아래서 고스톱치는 약간은 젊은,
상노인 축에는 끼기 싫어하는 노인들께도 인사드렸다. ㅎㅎ
중학교 때 대처인 대구로 우리가족은 이사를 했다.
그때의 모습, 누구네 엄마 아빠, 아제, 등등,,
그 어르신들의 모습은 정말 어른들이셨는데.
이제 내가 그때의 어르신들보다 더 나이든 상황이고 보니.
얼굴은 알아 볼수 있지만 풍채는 바람빠진 풍선! 같다면 실례일까
그렇게 작아지신 모습들이었다.
"저 미애입니다."
"아이고,, 너 누구누구 딸내미구나.. !"
내 이름자에 바로 아버지 성함이 붙어서 나오는 그래야 더 빨리 먹히는 곳, 역시 고향이었다.
내가 나만이 아니라 내 부모 형제들의 모습까지 함께인.
그나마도 맏이라서 가능한 것 같다. ㅎㅎ
아니면 아버지성함 밑에 누구 동생 아니면 몇째라고 한번더 안내가 필요한 상황 ㅎㅎ
빨리 못알아 들으면 서로들 퉁박을 주기도 하시며, ㅎㅎ
불쑥 찾아든 나를 인정넘치게 맞아 주셨다.
아버지 친구분들과 친구들의 어머니 등 모두들 정겨운 모습들
반겨주시니 인사 값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막걸리라도 한잔 들 하시라고 지갑을 헐었더니
그렇게들 반색하실 줄이야.. ㅎㅎ
이런 기분도 고향 아니면 느껴볼 수도 누려볼수도 없을 것이다.
과용했지만 두곳에다 지갑을 풀었다. 기꺼이.
이런 기회가 자주 올 수도 없거니와.
이런 마음이 이런 어르신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임을
고향 아니면 어느곳에서 이런 기분좋은 호사를 누릴수 있으라.
'웅양초등학교 57회'라는 천막과 그 옆에 '반갑다 친구야'라는 플렌카드를 보면서
동네 친구 영란이와 그렇게 33년 전 전학가서 담임 따라
대구의 낯선 친구들을 만나던 순간같달까.
동기들 캠프로 갔을 때, ,,,
와우!!!
중년의 남정네들만 소복한,
'넌 어디서 전학 온 얘니' 하는 듯한 그 짧은 순간의 서먹함이란..
나를 알아보는 친구도 알아 볼 수 있는 친구도 없었다.
그래도 57회라는 끄나풀 덕분인지 말은 여지 없이 반말이 나왔다, ㅎㅎ
돌아보니 이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은 이성에 눈 트이기 전,
그러니 더욱 모를수박에..ㅎㅎ
공부 잘 한 친구들 서너명 이름은 잊히진 않았지만 얼굴과는 역시 매치가 안되고,.
초등학교 앨범이라도 있다면 싶은 자리였다...
그 중 딱 한명 나를 알아본 사내가 있었다. ㅎㅎ 이런,, 반가움도 잠시. 나는 통 ,,,, .
"야, 너 이미애 맞니?"
반색하며 덥석 손을 잡는 그 사내,
나는 아무리 봐도 누구인지 모르겠고,.
잡은 손을 빼기도 그렇지만 반색하는 그가 난감해 할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그래도 동기니 덜 부담스럽달까..
" 넌 너구니 이름을 알려줘?"
"야아,, 그건 몰라도 되고 너 정말 미애 맞구나. 너가 영란이랑 올때 미애일거란 생각 했어.
내 예감이 맞았네.. " ㅎㅎㅎ
내 유년 기억의 편린들,
그 많은 무리!! 의 동기들 중에서 그래도 한 두명이지만 까맣게 잊은 줄 알았던,
아니 잊은 줄 조차도 몰랐던 추억들이 떠올랐다.
잠자던, 덮어둔 기억의 심지를 살며시 당긴 느낌이랄까.
그 줄끝에 씨줄과 날줄로 엮어진 인연들을 다시 보게된 느낌이랄까.
공부를 잘했거나 아주 농땡이 ! 였던 친구들이 확실히 빨리 떠올랐고,ㅋㅋ
그외 이름이 특이하거나. 어릴적 인상이 많이 남은 친구들 그렇게 알아볼 수 있었다.
나도 한 친구의 기억속에 유순한 아이로 기억되어 있었다.
존재감 별로 없는데다 어느날 떠났으니 모를 수 밖에...
고향을 지키고 있는 친구들이 준비해 준 동기들만의 아지트는 휼륭!!했다.
1부 식순이 끝나면 동기들끼리 그들만의 아지트로인 동호숲이나 다른 등등으로 이동했고
운동장은 나이드신 어른들의 2부 뒷풀이 쇼를 단체관람하는 분위기였다.
우리 동기는 서울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다. 3-40명정도, 예년보다 참석률이 많은 해라고 한다.
다행이 카페도 있다니 연결고리도 만들어진 느낌이다.
나는 내 유년기 추억속에 이렇게 무더기!! 로
많은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적이 없다.
동창회에 다녀온 느낌은 한 무더기 친구들이 생긴 느낌이다.
유년기가 모티브가 되는 절대로 아름답지 않을 수 없는 추억속의 친구들이다.
동기들과의 시간도 좋았고, 동네 친구들과이 시간도 좋았다.
동기들 모임에서 빠져나와 동네친구들과 모교 운동장에서 밤새도록!! 정을 나누었다. ㅎㅎ
달은 밝고, 넓은 운동장 여기 저기서 밤새도록 쌓인 회포를 푸는 동기 동기들..
영화속 장면같기도 한, 내 한눈에 담아오기엔 너무도 벅찬 것들!
숱한 감회들이 밀려왔다...
에고 다 풀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다...
신나게 놀아도 될 만큼 나이들었나 보다 그 만큼 시간도 많이 흘렀고,
그 동안 너무 바쁘게 살았나 싶기도 하고, 고향을 지키며, 관심두고 명맥을 유지해온 친구들이 제일 고맙다. .
그들의 수고 덕분에 이렇게 오랫만에 가도 좋은 느낌 좋은 기억을 되살려 낼수 있었으니.
자리 제공해준 동기들, 음식 준비까지. 멀리서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친구들까지
반가웠다 친구들아..
추억이 아름다운 건 지나와 버렸기 때문이지만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더라..
사람과 사람 얼마나 좋으냐..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는 시간이지만
맘껏 공유할 수 있으니..
다시 한번 고맙다. 친구들아 ,,
행복한 밤, 아름다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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