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구부러진다는 것

구름뜰 2011. 9. 13. 21:28

 

 

 

 

 

잘 마른

핏빛 고추를 다듬는다.

햇살을 차고 오른 것 같은 물고기에게서

반나절 넘게 꼭지를 떼어내다 보니

반듯한 꼭지가 없다. 몽땅

구부러져 있다.

 

해바라기의 올 곧은 열정이

해바라기의 목을 휘게 한다.

그렇다. 고추도 햇살 쪽으로

몸을 디밀어 올린 것이다.

그 끝없는 깡다구가 고추를 붉게 익힌 것이다

햇살 때문만이 아니다. 구부러지는 힘으로

고추는 죽어서도 맵다.

 

물고기가 휘어지는 것은

물살을 차고 오르기 때문이다.

그래. 이젠 말하겠다.

내 마음의 꼭지가 너를 향해

잘 못 박힌 못처럼

굽어 버렸다.

 

자, 가자!

 

굽은 못도

고추 꼭지도

비늘 좋은 물고기의 등뼈를 닮았다.

- 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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