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홍매화 겨울 나기

구름뜰 2011. 10. 10. 09:35

 

그해 겨울 유배 가던 당신이 잡시 바라본 홍매화

흙 있다고 물 있다고 아무데나 막 피는 게 아니라

전라도 구례 땅 화엄사 마당에만 핀다고 하던데

대웅전 비로자나불 봐야 뿌리를 내린다는데

나는 정말 아무데나 막 몸을 부린 것 같아

그때 당신이 한겨울 홍매화 가지 어루만지며

뭐라고 하셨는지

따뜻한 햇살 내린다고

단비 적신다고

아무데나 제 속내 보이지 않은다는데

꽃만 피었다 갈 뿐

열매 같은 건 맺을 생각도 않는다는데

나는 정말 아무데나 내 알몸 다 보여주고 온 것 같아.

매화 한 떨기가 알아버린 육체의 경지를

나 이렇게 오래 더러워졌는데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것 같아.

수많은 잎 매달고 언제까지 무성해지려는 나

열매 맺지 않으려고

잎 나기도 전에 꽃부터 피워올리는

홍매화 겨울 나기는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

-최영철. 시집 -<일광욕하는 가구> 문학과 지성사 2000

 

 

흙 있고 물 있다고, 햇살 내리고 단비 적신다고

아무데서나 꽃 피우지 않는.

화엄사 마당이라야 대웅전 비로자나불을 봐야만,

꽃만 피었다 갈 뿐 열매 같은 건 맺을 생각도 않는 

한떨기 매화도 알고 있는 경지.

지조있고 절개 곧은 겨울 홍매화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하셨다.

 

흙, 물, 햇살, 단비에 휘청거리는 우리네 삶을, 

화엄사마당, 대웅전비로자나불에게만

이라는 이 말장난 같은 절대미의 경지. 

겨울홍매화도 아는 그 경지를

우리 인간은 평생 모르고 살기고 하고,

모르는 척 살기도 하고, 편한대로 살기도 한다.

 

겨울 홍매화!!! 따라하기.

영원히 요원하기만 한 일일까. 

아! 홍매화 겨울 홍매화,,

 

 

 

솜사탕으로 도배한 것 같기도 하고, 

해동하는 겨울강의 얼음덩이 같기도 합니다. 

저 하늘아래 가을들판도 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가을무와 배추를 뿌려둔 밭으로 가는 풍경은

황금빛 벼와, 한참을 올려다 봐야하는 3미터 남짓의 키다리 수숫대

고개를 들때마다 그 자줏빛 뒤의 하늘색은 또 어떻구요. 

밭이랑에선 가을 배추가 며칠내로 묶어 주어야 할 만큼 덩치가 커졌고,

가을무는 갈때마다 제 몸 불려가는 모습에 얼마나 기특한지요..

 

쌈으로 먹겠다고 뿌려둔 조선배추가 제법 자랐습니다.

어제는 그것을 뜯어와 포항 다녀온 이웃사촌이 싱싱한 횟감을 장봐온 덕에

함께 쌈배추 시식을 했는데 가을 이 맘때라야 제대로 맛나는 쌈배추 맛에

다들 기절할~뻔 했습니다. ㅋㅋ  

이맘때 들녘을 보는 농부의 마음은 어떨지요. 

초보 농사지만 배 부른 가을입니다. 

 

가을은 하늘만 봐도 좋은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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