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 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마음만 오락가락 하노라.
뜻풀이
배꽃이 흩날리던 무렵에 울며불며 손잡고 이별한 님,
가을 바람에 낙엽지는 계절이 돌아왔는데 그 임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리 길 머나먼 곳에 가 계시니 마음만 오락가락 하노라..
梅窓(1513~1550)의 이름은 이향금이다.
매창은 그의 호다.
중종때 부안 명기로 거문고에 능하고 한시를 잘지었는데
그가 지은 '매창집'에 한시 40여 수가 전해져 오고 있다고 한다.
당대의 대시인 촌은 유희경(村隱 柳希慶)과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의병으로 떠난 촌은이 소식이 끊겨 수절한 기생이라고 한다.
매창이 죽은지 얼마 후에 부안의 시인 단체에서 묘비를 세웠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글자가 마멸되어 다시 세웠다고 한다.
부안의 서림공원에 가면 지방 유지들이 '매창기념사업회'를 조직해 매창시비를 세웠는데
이 시조 시비가 세워져 있으며 , 음력 4월 5일 부안에서 매창제를 하고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기녀들의 시조는 시조문학 측면에서 여러모로 의미 있다.
황진이나 홍랑등 기녀들의 시조는 유교적 문화권 아래였던 사대부 아녀자들 보다도
애정이나 정서표현에서 자유로웠을 것이다.
관비제도가 있어서 사대부들의 유흥장소에는 함께 어울렸고,
사대부들과 접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영향을 받았을것으로 본다.
반면 사대부 아녀자들은 시조에 참여할 기회가 거의 없었고
유교적 환경 제약도 많이 받았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저도 날 생각는가.
님 얘기지만 내 맘만 고스란히 들어있는 함축미!
'금기'여서 더 절창일 수 있었을까.
남존여비와 반상의 구별이 엄격했던 당시였지만
사후 그 절창을 알아봤던 유생들이 비까지 세워 주었다는 것,
이후 마모되고 낡은 것들 다시 재건해준것 까지.
매창시비는 부안민들의 혜안도 엿볼 수 있는 비석이 아닐까. .
이런 글을 읽은적이 있다.
자연물보다 비자연물인 예술작품이 영원한 것이라는
비자연물..
신의 창조영역을 인간이 침범한 것같이 남길 수 있는 것,,
에고,, 이 세상 하직하더라도 이런 마음 한줄 남겨두고 간다면.
내가 낳은 자식이 나는 떠나더라도 영원히 사는 것 같은 그런 기분 아닐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