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있다

구름뜰 2012. 1. 27. 10:15

나는 알고 있다

뭔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나는 있다

여기에 있다.

 

잠자고 있어도 나는 있다

멍하니 있어도 나는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나는 있다 어디엔가

 

나무는 서 있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고기는 헤엄치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이는 놀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 살아 있다.

 

누군가 어디엔가 있다 하니 좋네

가령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있다 해도

있는 거다 있어주는 거다

라고 생각하기만 해도 즐거워라

-다나카와 순타로(1981~ ) 김응교 번역

 

 

내가 여기에 없다면? 당신이 이 지구에 없다면? 내 아이가 여기에 없다면? 없다는 세상은 끔찍하고 아찔하다. 다행히 나는 아직은 있다. 이 우주에서 이 지구에서 잠자고 있는 나, 가만히 있는 나, 한 그루 나무처럼 한 마리 물고기처럼 크게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내 두 다리가 움직여 걸어간다. 발자국도 만들면서 그림자도 데리고 다니면서 나는 이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다. 당신도 마찬가지. 당신이 어딘가에 잇기만 하다면, 있어 줘서 좋다. 살아 있기만 하면 좋다. 그걸 잊고 우리는 늘 뭔가를 알아야만 하고, 뭔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랬지 갑자기 묻게 된다.

-최정례 시인

 

 

 

 깍아놓은 손톱같은 초사흘 달이 흔들렸습니다. 가로등도 미명속 나무들도. 상도 빛에 따라 달라집니다. 빛은 카메라의  생명. 빛이 없으면 있어도 있는게 아니게되네요. 카메라에겐 흔들림이 실상인 게지요..

 

 연암이 벗에게 보낸 엽서에 '개미와 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일찍이 약산에 올라 그 도읍을 굽어 보았네. 사람과 물건이 달리고 뛰는 것이 땅에 엎어져 꿈틀꿈틀하여 마치 개미굴의 개미같더군, 한번 훅 불면 흩어질 것 같았네. 그러나 다시 마을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바라보게 한다면, 언덕을 더위잡아 바위를 따라 덩굴을 잡고 나무를 안고 꼭대기에 올라, 망령되이 스스로 높고 큰 체하는 것은 또한 머리의 이가 머리카락에 붙어 있는 것과 무에 다르겠는가"

 

 산에 올라 보니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양새가 개미굴의 개미 같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보통의 인식은 여기까지지요. 하지만 연암은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면서 머리카락에 오른 이 같아 보일진데 스스로 높고 큰 체하는 것을 경계했지요. 연암다운 인식이지요. 형상은 변함없는 데 보는 위치에 따라 개미와 이 같기도 하고, 마음은 상도 없으면서 우주를 품을 만큼 넓기도 하고 바늘구멍도 용납못할만큼 용렬해지기도 하지요. 있는 데 없는 것 같고, 없는데 있는 것 같고, 중요한 건 뭘까요. 그렇다면 중요하지 않은 건 뭘까요. 위 詩 '있다'는 '있다'는 것만 직시, 더하기도  빼기도 하지 않은 젊은 시인의 담박함이 좋습니다.

 

'있다'는 것 만으로도 소중해지는 것은 '없다'는 인식의 결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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