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은 굳세게 껴안았는데도 사이가 떴다 뿌리가 바위를 움켜 조이듯 가지들이 허공에 불꽃을 튕기기 때문이다 허공이 가지들의 氣合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이다 껴안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무른 것으로 강한 것을 전심전력 파고든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무들의 손아귀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을 리가 없다 껴안는다는 것은 또 이런 것이다 작은 것이 크고 쓸쓸한 어둠을 정신없이 어루만진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글거리는 포옹 사이로 한 사나이를 고요히 지나치게 한다는 뜻이다 필경은 한 사나이와 나무와 허공을, 딱따구리와 저녁바람과 솔방울들은 온통 지나가게 한다는 뜻이다 구멍 숭숭 난 숲은 숲字 로 섰다 숲의 단단한 골다공증(骨多孔症)을 보라 껴안는다는 것은 이렇게 전부를 다 통과시켜 주고도 제자리에,고요히 나타난다는 뜻이다
-이영광
현대시학 (2006년 3월호) 1967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고려대 영문과 및 동대학원 국문과를 졸업. 199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빙폭>외 9편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
'숲'이라는 글자를 써보세요. 나뭇가지들이 얼기설기 엮인 형상처럼 보이지 않나요? 이렇게 나무들이 서로 기대거나 껴안는 것은 그 사이의 허공을 껴안기 위해서인지도 몰라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넉넉한 품으로 나비와 새와 바람과 사람이 수시로 드나들지만 나무들은 늘 그대로 서 있습니다. 서로를 굳세게 껴안고 있는 사람들을 보세요. 그들 역시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에게 빈 공간을 내어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거예요? " 가여운 것이 크고 쓸쓸한 어둠을 정신없이 어루만져 다 잊어 "버릴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주는 거예요. 어떤 팔이 당신 몸으로 건너올 때, 가만히 느껴 보세요. 그 팔이 거느린 허공까지 당신의 존재 속으로 파고들어오는 것을,
- 나희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