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막막한 날엔

구름뜰 2012. 2. 29. 08:32

 

 

왜 모르랴
그대에게 가는 길
왜 없겠는가
그대의 높이에로 깊이에로 이르는 길
오늘 아침
나팔 덩굴이 감나무를 타고 오르는 그 길
아무도 눈치재지 못할 속도로
꽃은 기어올라
기어이 울음인지 웃음인지
비밀한 소리들을
그러나 분명 꽃의 빛깔과 꽃의 고요로 쏟아놓았는데
너와 내가 이윽고 서로에게 이르고자 하는 곳이
꽃 핀 그 환한 자리 아니겠나 싶으면
왜 길이 없으랴
왜 모르랴
잘 못 디딘 덩굴손이 휘청 허공에서 한번 흔들리는 순간
한눈팔고 있던 감나무 우듬지도
움칫 나팔덩굴을 받아낸다
길이 없다고 해도
길을 모른다 해도 자 봐라
그대가 있으니 됐다
길은 무슨 소용
알고 모르고가 무슨 소용
꽃피고 꽃 피우고 싶은 마음 하나로
허공에 길을 내는
저기 저 나팔덩굴이나 오래 지켜볼 일이다

-복효근

 

 

 

 

"그대가 있으니 됐다"

당신 하고 싶은 말 다하고 나설랑은

'허공에 길을 내는, 저기 저 나팔덩굴이나 오래 지켜볼 일'이라구요.

 

막막한 날엔. 막막하니 

막막하니나 되어보라구요.

 

생채기가 나고 이물감이 들고

종기가 피고름을 쏟아내고 새살이 될 때까지

내 것으로 육화될 때까지

지켜보거나 기다리라구요.

 

지켜볼 일,

오래 지켜볼 일,

지키고 싶지 않을 때 

더 지켜볼 일,

 

무리지어 나는 새들

낮에 나온 달,

낭군 잃은 아내의 눈빛!

나는 괜찮다는 그 처연함까지.

지켜볼 일이라구요.

 

움칫!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도

지켜볼 일.

그 외의 일은 나도 모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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