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상추 좀 먹어야겠다고 지푸라기를 덮어둔 산 아래 밭에
상추 어루만지러 어머니 가시고
빵 딸기우유 사서 뒤따라 어머니 밟으신 길 어루만지면 가는데
농부 하나 밭둑에 우두커니 서 있다.
아무것도 없는 밭 하염없이 보고 있다
머리 위로 까치 지나가다 똥을 찍 갈려도 혹시 가슴에 깻잎 심어두어서
까치 똥 반가이 거두는 것인지
피하지 않는다
무얼 보고 있는 것일까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무것도 없는 밭에서서 있을 줄 알아야 농부인 것일까
내가 어머니에게 빵 우유 드리면서 손 한번 지그시 어루만져보는 것처럼
그도 뭔가 어루만지고 있긴 한데
통 모르겠다
뭐 어쨌거나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어루만지는 경지라면
나도 내 마음 속에 든 사람 꺼내지 않고 그냥 그대로 두고
서 있고 싶다
그냥 멀찍히 서서 겨울 밭처럼 다 비워질 때까지 그 사람의 배경이 되는 것으로
나를 어루만지고 싶다
앞으로는
참을 수 없이 그대를 어루만지고 싶으면
어떤 길을 걷다가도 길 가운데 사뭇 서야겠다.
상추 한 아름 받쳐 들고 내려오며 보니 마른 풀도 사철나무도 농협창고도
지그시 지그시 오래 서 있었다.
- 박형권 (1961~ )
**'현대시학'으로 사십 중반에 등단했다고 한다.
첫 시집 <우두커니>에 실린 대표작이다.
상추 한아름 뽑아오는 길에
어머니 같은 편안한 고향 풍경 그대로 담아내셨다.
우두커니를 처음 읽었던 작년 봄에도 그랬고
지금 다시 꺼내서 찾아 읽어도 그렇고
참 우두커니 하게 하는 글이다.
이 시를 알고나서는
하던 일 멈추고
지그시 우두커니만 하는 일도
아름다운 일임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