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을 틔우고
잎을 펼치고
열매를 맺고
그러다가 때가 오면 훨훨 벗어버리고
빈 몸으로 겨울 하늘 아래
당당하게 서 있는 나무.
새들이 날아와 팔이나 품에 안겨도
그저 무심할 수 있고,
폭풍우가 휘몰아쳐 가지 하나쯤 꺾여도
끄떡없는 요지부동.
곁에서 꽃을 피우는 꽃나무가 있어
나비와 벌들이 찾아가는 것을 볼지라도
시샘할 줄 모르는 의연하고 담담한 나무.
한여름이면 발치에 서늘한 그늘을 드리워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쉬어 가게 하면서도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
덕을 지닌 나무......
나무처럼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저것 복잡한 분별없이
단순하고 담백하고 무심히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법정·스님( 1932-2010)
나무처럼,
복잡한 분별없이. 무심히 살 수 있다면,
샤르트르는 그의 주저 <존재와 무(無)>에서 인간은 '無'라고 했다.
책상이나 컴퓨터 등 스스로 행위를 결정하지 못하는 부자유스러운 것들을 '존재'라고 했다.
'無'는 미리 주어진 본질이 없어서 스스로 본질을 만들 수 있는 자유가 있음을 상징한다.
즉 외적으로 규정되어 질 수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무한 가능성의 無다.
인간은 아무것도 되지 않을 수 있고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자유로움 그 자체다.
사람과 사람, 무와 무
그도 나를 사랑할까.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 감정은 절대적일까.
누구도 아닌 그 사람만일까.
사랑이지만 온전히 내 것일 수 없는
자유를 가진 네가
나를 향한 사랑을 철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너를 철회할 수 있다는 것,
너와 나의 지옥을 허락한다는 것,
그 고뇌야 말로 자유라는 것,
지옥과 천국
그 순간들 속에서 무심한 듯
무심하게 살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