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함께 하는 식구들 얼굴에서
삼시 세 끼 대하는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때마다 비슷한 변변찮은 반찬에서
새로이 찾아내는 맛이 있다
간장에 절인 깻잎 젓가락으로 집는데
두 장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아
다시금 놓자니 눈치가 보이고
한번에 먹자 하니 입 속이 먼저 짜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나머지 한 장을 떼내어 주려고
젓가락 몇 쌍이 한꺼번에 달려든다
이런 게 식구이겠거니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내 식구들의 얼굴이겠거니
열한시가 넘은 밤,
중학교 3학년 미홍이가 문자가 보내왔다.
"고모 이번 시험범위에 들어가는데 재밋으유"
빨간 줄이 몇 군데나 그어진 교과서를 통째로 보내왔다.
<식구>라는 유병록의 시다.
시험 공부하다가
내 생각난 것도 고맙고
사진까지.
미홍이가 늦은 밤에 나를 찾아온 것처럼
반가워서 나는 버선발인데
녀석, 마당까지 나간 나를
결국,
넘어뜨렸다.
"한 개 더 있어요 민지의 꽃- 정희성"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살배기 딸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을 비비고 일어나
말없이 손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