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이 답하다
순수한 심성의 반영…시를 알면 간교함이 없다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시의 나라(詩國)’ 라는 별명을 가진 국가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 읽혔고 미래에도 그러할 시집은. 답은 각각 중국과 『시경』이다. 기원전(BC) 11~6세기까지 약 500년간 중국 중원에서 유행하던 시 가운데 300여 편을 묶은 이 책의 본명은 『시(詩)』, 혹은 『시삼백(詩三百)』이었다. 후세에 ‘불변의 진리’라는 뜻의 ‘경(經)’이란 글자가 더해졌다. 『시(詩)』는 원래 무슨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
강가에서 얼핏 본 처녀에게 상사병 들린 청년의 애타는 심사, 오랜만에 친정 부모 뵈러 가는 새색시의 두근거림, 먼 지방으로 출장간 남편을 그리는 아내의 애타는 심경, 훌륭한 고을 원님의 자손들이 잘 되기를 비는 마을사람들의 축원 등등이다.
『시경』 앞머리 11편을 뭉뚱그린 주제다. 전체 305편의 절반 이상이 당시 사회 풍속을 반영하고 있다. 더 뒷장을 넘겨보면 상대의 욕정을 당장 받아 줄 테니 제발 내가 데려온 개가 놀라 짖어댈 만큼 허둥대지 말아달라는 한 처녀의 화끈한 속내도 보이고, 몰리에르의 『수전노』 주인공처럼 어느 인색한 부자의 어리석음을 야유하는 대목도 보인다.
온갖 욕망이 분출하는 오늘날의 독자들은, 고리타분한 유가 경전에 둔감한 현대인은, 당연히 무덤덤하겠지만, 『시경』을 신주(神主) 모시듯 했던 조선시대 선비라면 이러한 접근에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을 터다. 성호(星湖) 이익,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 같은 분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 그들은 『시경』을 성현이 ‘어린 백성’을 교화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경』은 세속적인 주제를 진솔하게 다룬다. 한(漢)나라 이후 2000여 년간 지속된 봉건사회의 두터운 덧칠을 벗겨낸 시의 ‘민얼굴’이다. 300편 외기를 얼음에 박 밀듯 했고, 늘 제자들에게 시 공부를 권장했던 공자는 시를 도덕성을 제고하는 수단만으로 여기지 않았다.
사실 시는 마음으로 느낀 것을 겉으로 드러나게 해준다.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알게 해 준다. 개인이 어떻게 세상과 조화롭게 소통하며 방종과 타락에 이르지 않을 수 있는지를 알게 해준다. 온갖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카타르시스 기능도 있다. 새·짐승·풀·나무·벌레·물고기 등의 생리와 명칭을 알게 해주는 덤도 있다.
이토록 사람 사는 것, 이른바 인문학 전반에 대한 포괄적이고도 구체적인 지적이 공자가 밝힌 시론이다. 그러니까 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 나아가 사람과 자연의 다양한 만남을 가능케 하는 매우 중요한 매개다.
공자는 또 말한다. “시를 모르면 높은 담장에 얼굴을 마주 대고 서 있는 것과 같다.” 즉, 시를 모르면 미래를 향한 전망이 없고 한 걸음도 진보할 수 없는 꽉 막힌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새삼스럽지만 시야말로 가장 고급한 소통의 도구다. 개개인의 아집이 득세한 이 불통의 시대에, 상하사방 동서고금과 소통하는 데 시만한 것이 있을까. 시는 가장 순수한 인간 심성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고전에 대한 오해가 있다. ‘좋은 책임을 알고 있지만 꺼내 읽는 않는 책’이란다. 중국 최초의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책이자 동양문화의 깊은 물줄기인 『시경』도 오늘날 이런 푸대접을 받고 있는 듯하다. 우리를 타인을 이해하며 ‘나’를 인간화한다. 『시경』은 그 휴머니즘의 도정에서 사람들이 두고두고 간직해야 할 보석덩어리다. 그 앞에선 이념도, 진영도 큰 의미가 없다.
공자가 일갈했다. “시삼백 일언이폐지 사무사(詩三百, 一言以蔽之, 思無邪).”. 시경 300수를 한마디로 줄이면 생각에 간교함이 없다는 뜻이다. 정치를 한다는, 나라를 위한다는 위정자들이 뜨끔해할 말이다.
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시경=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 본디 3000여 편이 수록됐다고 전하나 공자가 311편으로 간추렸고, 그 중 305편이 전해지고 있다. 남녀간의 애정, 현실의 정치를 풍자하고 학정을 원망하는 시들이 많다. 내용이 풍부해 문학사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사료로서도 가치가 높다.
# 공자는시를 한마디로 사무사(思無邪)로 정리하였다. 세상살이 강퍅해도 멀리 할 수 없는 이유다. 삿된 욕심이 없으니 인간이 만든 가장 인간적인 종교가 시가 아닐까.
학계에선 시경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시경 작품들중 당시 권력층에 입맛에 맞는 것들만을 골라서 들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에 실정에 맞는 작품들만 선별한 셈인데. 그러니 당연히 우리가 접한 시경은 교조적인 내용이 많고 정치적 풍자나 원망, 욕정 욕망의 작품들은 걸러졌을 것이다.
그렇게 들어온 시경은 시작에도 영향을 미쳤을 터이고, 가부장제나 유교적 풍습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시조가 사대부들의 유흥공간에서 짓고 즐긴것만 봐도 시를 특정계층의 전유물로 만드는 데 걸러들인 시경이 일조를 하지 않았을까.
사무사가 쉽지 않기에,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처럼, 초월적인 경계에 척 들어지지도 않는 이에게 인간적인 면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에 가장 좋은 장르가 시가 아닐까...시를 읽을 때마다 사무사가 되는 나만 봐도 시는 가장 인간적인 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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